혁신실천 경쟁서 상당한 흡인력
새누리 지난 4월 선제적 공론화
친박 주류 중심 반대 기류도 존재
무분별 모방 보다 한국 모델 찾아야
여야가 20대 총선 체제로 서서히 전환하면서 동시에 ‘게임의 룰’에 대한 논란도 재연되고 있다. 이번에도 최대 관심사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여부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은 상당한 파괴력이 있고, 이 점에서 총선을 겨냥한 여야간 혁신 경쟁의 유력한 소재다. 하지만 우리 정치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이고 특히 현역의원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與, 일찌감치 당론 채택… 親朴 일부 반발
오픈프라이머리는 미국의 대선후보 선출 과정처럼 공직후보자를 선출할 때 유권자라면 당원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완전국민참여경선을 의미한다. 우리 정치권에선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이 “계파ㆍ줄세우기 정치를 청산하겠다”며 제시한 기간당원 상향식 공천제가 출발이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4월 의원총회를 열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당론으로 확정한 뒤 기회 있을 때마다 야당의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김무성 대표의 의지가 강하다. 김 대표는 지난 13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여야가 같은 날 동시에 실시하자”고 거듭 제안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야말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새누리당에선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 18,19대 총선 공천 당시 각각 ‘친박 학살’, ‘보복 공천’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만큼 내홍이 컸기 때문에 상향식 공천에 대한 요구가 상당하다. 김 대표가 두 차례 공천에서 모두 뼈 아픈 경험을 했던 터라 오픈프라이머리에 공을 들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친박 주류그룹을 중심으로 한 반대 기류도 분명히 존재한다.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 아니냐고 보는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을 앞세워 김 대표 본인이 파벌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딜레마에 처한 野… 또 다른 계파 갈등 불씨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달리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여부에 대한 고민이 깊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과 현역의원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현실 사이의 딜레마다. 특히 문재인 대표 체제가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해 어렵사리 꾸린 ‘김상곤 혁신위’가 이에 부정적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3일 여당의 오픈프라이머리 동시 실시 제안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는 짧은 논평을 낸 뒤 좀처럼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 수도권 3선 의원은 “새누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마치 공천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치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개혁적이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혁신위는 사실상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선을 그은 상태다. 인지도와 조직력에서 앞서는 현역의원의 공천을 보장해주는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현역의원 물갈이’가 불가능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한 혁신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새 피 수혈’의 필요성이 훨씬 큰 야당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제도”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비노계를 중심으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해 자칫 계파 갈등의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 호남권 비주류 의원은 “혁신위가 무슨 권리로 물갈이를 하느냐”면서 “지역주민들의 선택에 의해 후보를 공천하는 게 최고의 혁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ㆍ美 제도의 무분별 조합… “한국식 모델 찾아야”
사실 우리 정당들의 모습은 당원ㆍ중앙당 중심의 유럽식 모델과 원내 활동 중심의 미국식 모델을 무분별하게 섞어놓았다는 비판이 많다. 계급정치의 색채가 강하고 의원내각제가 주를 이룬 유럽의 정당들과 비슷한 모습을 해놓고, 선거 때만 되면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를 개혁과 혁신으로 포장해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 실험 실패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기간당원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된 상당수 총선 후보자들이 17대 국회 의정활동 과정에서 ‘친노 홍위병’으로 불리며 국민적 외면을 자초했고,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동원ㆍ조직ㆍ돈 선거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결국 현역의원들의 기득권 강화 수단으로 작동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합의로 선거법을 개정해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역선택 가능성이 큰 만큼 이미 시기적으로도 늦었다”면서 “좋아 보이는 외국 제도를 무분별하게 들여오는 것보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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