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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의 매체는 대체] 감시자를 감시하기

입력
2015.07.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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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영화 '미션임파서블:고스트프로토콜'에서 첩보기관 IMF의 IT전문요원인 벤지 던(사이먼 페그)이 서버실을 장악, 건물 내 시스템을 자유자제로 통제하는 장면. 영화 스틸컷
2015-영화 '미션임파서블:고스트프로토콜'에서 첩보기관 IMF의 IT전문요원인 벤지 던(사이먼 페그)이 서버실을 장악, 건물 내 시스템을 자유자제로 통제하는 장면. 영화 스틸컷

‘미션 임파서블’ 같은 스파이활극에는 항상 첨단 도구를 동원하여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감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놓고 인권침해인 상황이 납득도 가고 재미도 있는 이유는, 상대가 매우 강하고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법과 공권력으로 다루기 어려운 강력한 범죄자거나, 해외의 전쟁광이거나, 세계정복을 노리는 적대적 스파이세력이다. 그런 이들을 감시하여 허점을 찾고, 작전을 걸어서 결국 무너트린다. 해피엔딩이다.

국정원이 한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만능 감시툴을 사들여 사용해온 것이 적발되어 논란이 크다. 해당 툴이 한국을 포함해서 여러 국가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추측 자체는 이미 작년 초에 토론토대학의 시티즌랩에 의하여 제기되었지만, 이번에는 누군가가 그곳의 영업 자료를 대량으로 인터넷에 유출시키는 바람에 확실하고 세부적인 근거가 생긴 것이다. 사안을 더 이상 숨겨놓을 수 없게 되자, 국정원은 “국민을 대상으로는 사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숫자가 제한된 표적 감시용 도구인 만큼,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검열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국내에서 주로 활용하는 통신 서비스들을 뚫고자 한 것이 드러났을 때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들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짓이 아니라는 매우 관대한 가정 하에서라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나쁜 놈만 잡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북한에 의한 천안함 격침론을 부정하는 재미 과학자를 감시하려고 했다는 사실과 결합하면 흥미로워진다. 그를 반드시 감시해야 할 만한 사람, 북한 공작원에 준하는 “나쁜 놈”으로 규정한 것이다. 격침론에 반증을 시도하면 감시 대상으로 놓고 탈탈 털어야 할 위험인사가 되는 것인가. 혹은 큰 선거를 앞두고 국정원이 동시 감시 대상자 숫자를 배로 늘려달라고 업체에 요청했다는 사실도 그렇다. 선거 국면에서 공작원들이 여론조작 활동에 나설 가능성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다른 뚜렷한 근거 없이 선거철에 보수정권을 반대한다고 해서 감시 당해 마땅한 수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이유는 없다. 이런 모습들이 뚜렷한 소명을 거친 절제된 증거 수집에 가까운가, 아니면 권위주의 체제의 소위 공안 개념에 입각한 비국민 취급과 불평불만분자 약점 찾기에 가까운가.

국가기관이 신통방통한 감시 도구를 구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딱히 이례적이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다.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은 나름 이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너머로는 스파이활극이 끝나고, 차가운 현실이 시작된다. 감시 대상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규정하고, 그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누가 어떻게 감시할 것이며, 감시 오남용을 했을 경우 어떻게 막대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가. 국정원이 자의적 공안 이념으로 활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대로 민간의 통제를 받게 만드는 것은, 범이념적, 범진영적 과제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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