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를 보내면서 몇 마디 적을 내용이 있어 엽서를 꺼내 펜을 들었다. 자판 두드리는 데 익숙해진 손가락이 빳빳하고 매끄러운 종이 앞에서 다소 민망해하는 느낌. 펜을 쥔 손이 젓가락질 처음 배우는 아이의 그것처럼 어수룩하게도 보인다. 한동안 더듬거리다가 내심 쓰려했던 안부를 몇 자 적어 넣으니 이내 마음도 달짝지근하다. 형식적인 말투나마 조금은 더 정성스레 다듬고 글자꼴도 예쁘게 보이려 곰살맞은 수작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엽서의 여분이 많지 않기에 더 그러는 것이기도 하다. 자칫 오탈자가 생겨 망치게 되거나, 성의 없어 보이게 되거나, 잉크 찌끼라도 묻어 더럽히게 될까 손끝에 전에 없는 긴장이 감돈다. 그 긴장에 차츰 적응되니 괜히 마음이 훈훈해진다. 속엣말의 온도 역시 평시보다 몇 도 정도 더 데워지는 기분.
글씨 모양만 보고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차릴까 노심초사했던 사춘기 시절이 떠오른다. 마음이 그대로 담기길 바라고,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어 그쪽 마음도 내 마음 같기를 바라던 때. 그러면서도 애써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고 별과 달 따위로 에둘러 무슨 견우직녀인 양, 우리만 아는 비밀의 다리에서 만나자고 속삭이고 싶었던 때. 종이에 펜을 눌러 적으니 문득, 글씨들이 말이 아니라 하늘을 떠도는 마음의 반딧불 같다. 부디 은밀한 봉화처럼 휘날려 그편 마음에도 반짝반짝 빛이 돌기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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