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출시 차량 포함 30여종 유출… 영업비밀 등 피해액 700억원대
2명 구속… 20명 불구속 입건
현대ㆍ기아자동차의 신차 설계도면 등 최신 기술이 협력업체 직원 등에 의해 상당수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로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신차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현대ㆍ기아차 협력업체인 A사의 전 직원 김모(34)씨 등 2명을 구속하고, A사 직원 백모(34)씨 등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설계용역업자인 김씨는 A사를 퇴직한 후 지난해 3월부터 약 6개월간 중소 설계용역업체인 B사에 파견돼 근무했다. 현대ㆍ기아차 전직 임원이 설립한 설계용역업체인 B사는 당시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자동차 제조업체와 손을 잡고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씨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김씨는 A사 재직 당시 친하게 지내던 백씨 등 직원 9명으로부터 이메일과 메신저 등을 통해 현대ㆍ기아차의 신차 3D설계도면 등 영업비밀 130여건을 넘겨받았다. 그는 불법 입수한 기밀을 신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활용했고 관련 정보는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손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유출된 설계도면은 약 30여개 차종과 관련된 것이었고 김씨가 범행을 저지를 당시에 출시되지 않은 것도 6종이나 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범행은 현대ㆍ기아차가 협력업체인 A사를 상대로 보안감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보안감사 결과 백씨 등의 컴퓨터에서 김씨에게 영업비밀을 이메일 등을 이용해 보낸 흔적이 발견됐고, 영업비밀 사항을 개인 컴퓨터에 저장하는 등 기밀사항을 공공연하게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김씨와 A사 직원들 간에 금품이 오고 간 흔적은 파악하지 못했다.
김씨와 함께 구속된 곽모(53)씨는 B사의 하청을 받는 또 다른 설계용역업체 C사의 대표로,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현대ㆍ기아차의 하청업무를 하면서 입수한 설계도면 등 영업 비밀 70여건을 B사의 내부전산망에 올려 중국 신차 개발사업 담당자들과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곽씨가 빼돌린 영업비밀은 주로 차량의 외장과 차체에 대한 정보였다.
B사는 이렇게 유출된 도면을 이용해 신차 개발을 끝내고 결과물을 중국 업체에 넘겼다. 하지만 경찰은 중국 현지에서 실제로 차량이 생산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대ㆍ기아차는 유출된 도면이 생산에 사용됐다고 가정할 때 2014년을 기점으로 3년간 영업상 피해액이 7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은 이번에 검거된 이들이 금품을 주고받은 조직적 산업스파이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가 정보유출 과정에 직접 연루된 정황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대가 없이 친분으로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지금까지 수사 내용상 중국 업체 지시 하에 조직적으로 범죄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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