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물보다 페로몬 인식 낮아
서로 밀착해 냄새 맡는 과정서 입술 접촉으로 획기적 변화
전 세계 168개 문화권 중 77곳만 사랑하는 남녀가 키스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는 주인공 현준(이병헌 분)과 승희(김태희 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사탕키스를 해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입을 맞춘 뒤 입안의 사탕을 서로 주고 받는 장면인데,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는 각종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2010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는 여주인공이 카푸치노를 마시고 입에 묻은 거품을 닦지 않자 남자주인공이 입술에 키스하며 거품을 닦아주는, 일명 ‘거품 키스’가 눈길을 끌었고, 남녀가 토스트를 서로 나눠 먹는 ‘토스트 키스’, 뱀파이어와 인간의 수중 키스 장면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로맨틱한 키스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인류의 보편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키스는 현대 관습일 뿐?
하지만 최근 “사랑하는 남녀 사이의 키스는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관습일 수도 있다”라는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방송 BBC는 윌리엄 존 코윅 미국 네바다대학 교수의 연구보고서 자료를 인용해 16일 이같이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68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46%에 해당하는 77개 문화권에서만 사랑하는 남녀가 키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윅 교수는 “로맨틱 키스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특정한 행동 양식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단, “이번 보고서는 부모-자식간 키스를 제외한 채 사랑하는 남녀 간 신체적 키스 사례만 관찰 대상으로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키스는 보는 이에 따라 이상하거나 구역질 나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게 코윅 교수의 주장이다. 키스를 하면서 두 사람은 상대방과 타액을 서로 교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번에 약 8,000만 마리의 박테리아가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6%는 여전히 ‘첫 키스’의 추억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잊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정서로 인식되고 있다. 키스가 로맨스라는 행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코윅 교수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곤 하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는 억압된 행위일 수도 있다”며 “키스는 현대 인류가 ‘상당히 최근’에 발명한 행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키스는 구역질 나는 행위”
문화인류학적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라파엘 월더스키 교수는 “각종 자료에 따르면 수렵ㆍ채집인들의 경우, 키스를 혐오스럽게 생각했다”라며 “로맨틱 키스는 근래에 들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브라질의 메힌나쿠 부족은 키스를 “구역질 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3,500년 전 힌두교 베딕 산스크리트의 한 문장에는 “키스는 서로의 영혼을 들이마시는 것”이라고 묘사되기도 했지만,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나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굴을 밀착한 모습이 발견될 뿐 서로 입을 맞추는 행위는 발견되지 않는다.
동물들은 키스를 할까?
그렇다면, 생존 본능이 강한 동물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키스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인류와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침팬지나 보노보는 키스와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관찰됐지만 이들의 행위는 ‘로맨스’와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침팬지의 경우 싸움이나 육체적인 충돌을 한 뒤 입을 맞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행동은 수컷과 암컷, 혹은 암컷간이 아닌, 수컷들간에서 더 일반적으로 이뤄졌다. 로맨틱한 행위가 아닌, 화해의 한 형태인 것으로 풀이된다.
침팬지의 사촌격인 보노보는 상당히 자주 키스를 하며 그 과정에서 혀를 사용하는 장면도 관찰됐다. 미국 모리 대학 프란스 드 왈 교수는 그러나 “그들의 키스 역시 로맨틱한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보노보는 상당히 성욕이 강해, 두 개체가 만나면 대개 ‘보노보 악수’라 불리는 성관계를 한다. 결국 보노보에게 키스는 인간이 서로 만나서 인사치레로 악수를 하는 여러 행동 양식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기타 다른 동물들의 행동양식에서는 키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서로 얼굴을 부딪치거나 핥아주는 경우는 있지만, 타액을 서로 교환하거나 입술을 부딪히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야생 맷돼지의 경우 수컷은 짝짓기 시기가 되면 강력한 냄새를 풍긴다. 이 페로몬은 암컷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매우 중요한 화학 물질이다. 암컷도 이 냄새를 많이 풍기는 수컷은 그만큼 더 생식력이 강한 수컷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암컷의 후각은 매우 예민해서 수컷과 키스를 하기 어렵다고 한다.
맹독충으로 알려진 검은과부거미의 수컷은 암컷이 배가 부를 때 생산해 내는 페로몬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검은과부거미 암컷은 교배 후 수컷을 잡아 먹는데 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인간은 왜 키스를 선호하나
월더스키 교수가 수백 명을 대상으로 키스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키스할 때 어떤 냄새가 나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임 여성들은 냄새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후각은 동물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인데, 이런 신체적 열악함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밀착해 냄새를 맡고 싶어하며 이 행위가 신체적인 입술 접촉으로 변화됐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월더스키 교수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키스는 상대방의 페로몬 분별을 위해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수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이정민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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