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구입 당시 재직
대법원은 16일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도, 그가 신청한 보석은 기각 결정했다. 원 전 원장의 유죄 입증을 위한 핵심증거를 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지만, 그에게 죄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는 판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2심에서 법정 구속된 원 전 원장을 풀어주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시각도 없지 않다. 이로써 원 전 원장은 역대 국정원장 수난사에 자신의 이름을 지우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이날 원 전 원장 측의 보석 청구에 대해 “허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기각 결정에 관여한 대법관 4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단인 법무법인 처음은 “제출된 증거의 양이 방대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석 신청서를 지난 3월 냈다. 앞으로 원 전 원장 측은 파기환송심을 맡는 고등법원에 보석을 재청구할 수는 있다.
앞서 원 전 원장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대선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작년 9월 1심은 국정원 대북 심리전단을 통해 정치에 관여한 혐의(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었다. 법정 구속 당시 원 전 원장은 개인 비리로 실형을 선고 받고 지난해 9월 만기 출소한 지 5개월 만에 구치소로 되돌아갔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으로 재직 중 건설업자로부터 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1억 7,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14개월 간 수감생활을 했었다.
역대 국정원장 가운데 가장 긴 3년째 법정과 구치소를 오가고 있는 원 전 원장은 19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주로 서울시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서울시장 재직 때 인연을 맺어 그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2003~2006년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거쳐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임명돼 1년간 재직했다. 이어 정보 관련 경력이 전무한데도 2009~2013년까지 4년간 국정원을 이끌었다. 국정원장 당시 그는 이 전 대통령이 밀어붙인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과 국정성과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또한 정부 정책기조에 반대하는 세력을 ‘종북좌파’로 지칭하며 국정원 내부망에 ‘원장님 지시 말씀’이란 제목의 글을 올리게 해 조직적 대응을 강조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안팎의 많은 반발을 불렀다. 특히 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종북 좌파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인다’ ‘전교조 등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은 명예훼손이 인정돼 1,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의 수난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국정원이 대선을 앞둔 2012년부터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에서 해킹프로그램인 원격조정장치(RCS)를 비밀 구입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현재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원 전 원장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추가 기소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가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특정인사의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를 해킹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