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그룹, 70억유로 긴급지원 합의
ECB, 긴급유동성지원 한도 증액
그리스 의회가 16일 새벽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를 위해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개혁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개혁 법안 통과를 위한 토론이 의회에서 진행되는 동안, 길 건너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40명이 연행됐다.
이날 표결에 상정된 부가가치세 인상과 연금 삭감, 통계청 독립성 강화, 재정지출 자동삭감 등 4개 법안은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229명이 찬성해 여유롭게 통과됐다.
그리스의 개혁 법안 의회 처리로 협상 개시 조건에 충족함에 따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은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유로그룹은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단기 자금으로 70억 유로(약 8조 7,600억원)의 브릿지론을 제공하는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달 26일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약 890억 유로(약 111조원) 로 올린 후 처음으로 ELA 한도를 앞으로 1주일간 9억 유로를 증액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달 29일부터 마비 상태였던 그리스 은행들은 현금자동출금기(ATM)의 인출 한도는 당분간 유지하는 가운데 오는 20일부터 영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개혁 법안 투표는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분열을 가져왔다. 반대표를 던진 64명 중 절반인 32명이 집권당인 시리자 소속 의원으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입지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 나머지 6명은 기권했고 1명은 불참으로 합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치프라스 총리는 표결에 앞선 연설에서 “동의할 수 없는 협상안에 합의하는 것과 무질서한 채무불이행,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의 계획인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며 찬성표를 호소했다.
하지만 시리자 강경파 의원들은 물론 시리자 중앙위원회 위원 과반수도 개혁법안이 그리스 국민에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리자의 좌파연합을 이끄는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에너지부장관은 드라크마화 복귀를 요구하며 협상안을 거부하겠다고 밝혔으며 나디아 발라바니 재무차관은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어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채무협상을 담당했던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도 반대표를 던졌다.
한편 개혁안의 의회 통과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15일 저녁 아테네 의회 앞에서 벌인 시위가 격화돼 폭력상황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날 오전부터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1만 5,000여명의 시민들은 “구제금융을 취소하라!” “채권단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 시위에 나섰다. 시위에 참여한 실직한 프랑스어 교사인 에비 리나르디는 가디언에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리며 문 밖에서 자는 것을 보고도 그들을 도울 돈조차 없다, 나도 세금을 내지 못해 지난 4년간 난방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며 그리스가 유럽연합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수급자인 멜리나 코타키(71)는 “이건 옛날 전쟁 때 벌어졌던 일들을 상기시킨다, 우리 정부는 독일이 유럽을 다시 파괴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그리스 공공부문 노조도 긴축정책을 수용한 합의문에 항의하는 24시간 파업을 벌였으며 시리자의 청년 당원들도 개혁안 통과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평화롭게 거리 행진이 이어지던 시위는 이날 저녁 개혁안 통과를 놓고 의회의 토론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폭력 양상을 보였다. 방독면과 복면을 한 수십명의 청년 무정부주의자들이 거리로 뛰어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하자 차량 20여대로 신타그마 광장을 에워싼 경찰이 최루 가스를 쏘며 진압에 돌입해 시위대 40명을 연행했다. 외신들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발생한 잔해에 경찰 4명과 사진기자 2명이 상처를 입었으며 인근에 주차한 차량들도 손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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