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거리에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대학생의 본업이 시위ㆍ집회였던 신군부 시절. 부모님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여쭤보면 부모님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얘기는 묻지도 마라, 잡혀간다.” “엄마, 우리가 집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높으신 분들이 어떻게 알아요?”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속담을 꺼내셨다. 아버지는 회사원, 어머니는 주부인 평범한 집이었지만, 멀쩡한 사람도 잘못하면 ‘삼청교육대’라는 곳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 수 있다던 그때 분위기는 그랬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강산도 세 번은 변했다.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그런 대화를 하면 잡혀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PC에서, 스마트폰에서 글을 올릴 때, 댓글을 달 때, 심지어 ‘좋아요’를 누를 때조차, 한번쯤 주저하게 된다. ‘이 댓글을 누가 단 것인지 IP 추적만 하면 쉽게 볼 수 있을 텐데.’
국정원이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에서 불법 도감청 프로그램을 들여와 수십 명의 인사들을 감시하는 데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사건 역시 ‘벽에도 귀가 생겼다’는 진실을 확인시켜 줬다. 이 사실이 폭로되면서 국정원은 더 이상 ‘타깃’이었던 수십 명에 대한 감시는 못하게 되었지만, 거꾸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국정원이 알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누렸다.
감시 당하고 있다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헌법 조문에 표현의 자유가 쓰여 있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위축되게 만드는 것이 감시의 힘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면 바로 당사자 고발 없이 글을 삭제하고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입건하는 식으로 법 집행기관이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PC에서 댓글을 쓸 때 주저하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할 때, 사진을 찍을 때, 문자를 보낼 때도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해킹팀 관련 기사에는 “자기가 떳떳하면 감시 당하는 게 뭐가 무서워? ‘좌빨’들이나 불안해 하지” 라는 댓글도 종종 보인다. 이런 댓글을 단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집권해도 똑같이 생각할까?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사정기관, 정보기관은 감시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행태를 보면, 미국에서도 집권 세력이 누구든 정보기관은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감시와 감청을 더 강력한 방식으로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보기관의 이 같은 행위를 정당한 목적으로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은 시민사회와 국회가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일이다. 미 의회도 법원의 허가 없는 NSA의 대량 통신기록 수집을 금지하는 내용의 미국 자유법(USA Freedom Act)을 지난달 초 통과시켰다.
해킹팀 사건의 파장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건처럼 단순히 잊혀진다면 국정원이나 사정기관은 또다시 불법적인 해킹 도구를 사용해 시민들을 감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스노든의 폭로를 계기로 만들어진 미국 자유법처럼 해킹팀 사건 역시 스스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응집된 힘을 끌어낼 계기로 삼아야 한다. 6ㆍ29 선언은 신군부 위정자들의 선물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었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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