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초 미국 서부지역 주민 9명이 난데없이 홍역에 걸렸다. 병은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인근 오리건 아리조나 유타 콜로라도 주로 번졌고, 한 달 여 만에 감염자는 100명을 넘어섰다. 첫 환자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이들이었고, 감염자 중에는 디즈니 직원 5명도 포함됐다. 미 보건당국은 병의 진원지를 디즈니랜드로 추정했고, 이후 언론은 ‘디즈니 홍역사태(Disney Measles Outbreak)’라 불렀다.
3월 이후 병은 진정됐지만 감염자 상당수가 백신을 안 맞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백신 접종 의무화를 둘러싼 찬반 논란으로 번졌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6월 말 강력한 ‘학교백신법’을 가결했다. 학생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정 싫으면 학교 대신 홈스쿨링 등 대안을 찾아보라는 거였다. 그 영향은 인근 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가장 큰 ‘홍역’은 디즈니랜드 자체가 앓았을지 모른다. 올해는 디즈니랜드가 개장 60주년을 맞이한 해다. 법을 둘러싼 논란이 일 때마다 제 이름이 끊임없이 환기되는 현 상황이 아주 못마땅할 것이다.
1955년 오늘(7월 17일, 일반 개장은 18일), 초대된 내외신 기자들에게 월트 디즈니는 이렇게 연설했다고 한다. “디즈니랜드는 여러분의 나라입니다. 노인들에겐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줄 것이고, 청년에겐 미래의 희망을 갖게 해줄 것입니다. 오늘의 미국을 창조한 꿈과 이상, 또 모든 노고에 이 디즈니랜드를 바칩니다. 디즈니랜드는 전 세계인의 기쁨과 영감의 원천이 되리라 희망합니다.”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의 호두밭과 오렌지농장 65ha를 갈아엎어 만든 디즈니랜드의 입구 현판에는 디즈니의 저 연설이 “여러분은 지금 과거와 미래,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압축돼 있다. 그 60년 사이 약 7억 명이 그곳을 다녀갔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디즈니의 ‘꿈과 이상과 마법의 세계’를 꿈만 꾸다 갔을 것이다.
생전의 그는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작은 생쥐(미키마우스) 하나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작’과 더불어 그가 꿈을 실현해 온 ‘과정’도 기억해야 한다. 전성원이 쓴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인물과 사상사)라는 책에는 월트 디즈니가 자행한 가난한 예술가들에 대한 착취와 노동운동 탄압, 마피아ㆍFBI와의 은밀한 거래 이력 등이 소개돼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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