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SNS로 ‘요리하는 사람인데 함께 일하고 싶다’는 기분 좋은 제의를 자주 받는다. 그 중에는 정말 절실하고 진실한 사람이 꽤 많을 테고 정말 좋은 동료가 될만한 요리사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채용할 자리가 없다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 가관이란 생각이 들곤 한다. 연필이나 사인펜으로 찍찍 그리다시피 가져오는 이력서, 스마트폰 셀카 사진을 첨부한 이력서, ‘자애로우신 어머니와 엄하신 아버지’로 시작하는 너무 뻔한 자기 소개서들을 볼 때 그렇다. 심지어 한 지원자는 한 번도 주방에서 일을 해 본적은 없지만 잘 할 자신이 있다며, 자신은 4년제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왔으니 부주방장급의 월급을 달라고 한 적도 있다.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뽑아서 같이 일한 사람 중에 1년 이상 함께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뽑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5년 전부터는 나만의 방식으로 면접 인터뷰를 한다. ‘나는 돈을 줄 테니 너는 노동력을 다오. 그러니까 너에게 얼마를 주면 되니?’식의 인터뷰가 아니라 ‘당신은 나에게 동료가 돼 줄 수 있습니까? 당신도 내가 동료가 될 자격이 있는지 함께 판단해 보세요’라는 식이다.
인터뷰 방식을 바꾼 뒤 지원자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들이 생겼다. 이를테면, 가방을 들고 왔다면 가방 속에 뭐가 들었나, 최근에 읽은 책이 뭔가, 스포츠를 좋아하나, 이성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뭔가,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 하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심리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나와, 그리고 지금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다. 20년 동안 주방에서 일하면서 일을 잘하는 동료는 정말 많이 봤다. 나보다 음식 간을 더 잘 맞추는 2년차 요리사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일을 잘 한다고 오래 같이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제는 동료와의 트러블.
요리사에게 요리는 당연히 지켜야 할 대의명분과 같은 것이니 차치하고, 요리를 제외한 공통점이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면서 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때론 혼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가게 한 곳엔 탈북자 출신 요리사가 있다. 꽤 오래 전에 한국에 왔지만 아직 여러모로 다르다고 생각되는 면이 있다. 아직 어려서 요리에 부족한 점이 있는 탓에 선배들에게 지적도 받는 모양이다. 그래도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책이나 영화, 종교, 이성문제 등 공통점이 다른 동료들과 어우러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요리사들은 ‘직원’이 아니라 ‘동료’다. 그들이 없으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네 곳의 가게를 운영할 수 없다.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내가 만든 것 못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게를 책임져 줄 그들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료들이다.
그래서 난 주방에서 ‘내 것’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내 주방’ ‘내 새끼’ ‘내 음식’ 같은 자기를 중심으로 가게가 돌아간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표현들 말이다. 내가 없어도 주방을 돌아가게 만드는 건 동료들 덕분이니까. (물론 법적 책임이 따르는 가게는 ‘내 가게’라고 부른다. 그래야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이런 식의 면접 인터뷰 방식을 고수할 참이다. 서로 허심탄회하게 질문하고 대화하고 이해해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 동료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니까. 물론 월급은 적정선에서 주는 걸 전제로 말이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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