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유라시아 친선특급 북선 참가자 196명을 나눠 태운 9대의 버스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20km 떨어진 우수리스크시 외곽 라즈돌리노예 강가의 한 비포장도로에 멈춰 섰다. 인가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수풀 한 켠에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보재(溥齋) 이상설(1870~1917) 유허비(遺墟碑·고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세운 기념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1907년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라는 고종의 특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대표로 파견된 독립운동가 이상설. 특사 실패 후 그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의병군을 창설하고 권업회 등 항일운동 단체를 주도했던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그러나 오랜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고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몸과 유품은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유해는 라즈돌리노예강에 뿌려졌다. 광복회는 2010년에서야 강변에 유허비를 세웠다.
이 선생과 함께 헤이그 특사였던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 조근송(60)씨는 “연해주와 북간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도 가능했던 일”이라며 “유해나마 고향으로 왔다면 후손들이 찾아가 성묘라도 드렸을 텐데 술 한 잔 준비 못 해 죄송스럽다”며 절을 올렸다. 참가단 일행 모두 숙연한 분위기 속에 위령제를 지냈다.
유허비에서 2km 떨어진 골목에 들어서자 ‘독립운동가 최재형(1858~1920)의 집’이라는 안내판이 내걸린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자금을 대고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까지 지낸 최재형 선생이 죽기 직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그는 1920년 일본군들이 연해주 고려인 300여명을 대량 학살했던 ‘4월 참변’에서 총살됐다. 고택을 매입해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인 고려인 3세 김 니꼴라이 페트로비치(60) 연해주 민족문화자치회 회장은 “우리 고려인은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이 선조들의 조국이란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우수리스크에 거주하는 고려인 1만 5,000여명 중 6,000여명이 자치회에 소속돼 독립유적지 관리에 힘쓰고 있다.
고택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는 최초의 해외 임시정부라고 할 수 있는 대한국민의회가 태어났던 전로한족중앙회 건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지의 초ㆍ중등학교로 바뀌어 입장 자체가 제한됐다. 바이올린 공연팀으로 친선특급에 참가한 광명교육청 소속 보건 공무원 황은지(27)씨는 “한국사를 공부할 때마다 애국심을 느꼈던 장소였는데 실제 와 보니 많이 초라해 안타까웠다. 러시아와도 잘 협의를 해 우리의 독립 정신을 잘 보존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친선특급 참가자들은 이날 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1만2,000km를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밤새 13시간을 달려 다음 기착지인 하바롭스크에 도착할 예정이다.
우수리스크ㆍ블라디보스토크=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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