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주류 출판사의 변화 바라는 것보다 문단 바깥의 자발적 연합들을 지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주류 출판사의 변화 바라는 것보다 문단 바깥의 자발적 연합들을 지지"

입력
2015.07.15 17:36
0 0

"대중 무너진 상식에 분노

90년대 가부장적 문단이 신 작가에게 멍석 깔아준 셈"

창비ㆍ문학동네 참석 안 해

15일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에서 정문순(오른쪽) 문학평론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문단권력의 주체로 지목된 창비, 문학동네의 편집위원들은 불참했다. 연합뉴스
15일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에서 정문순(오른쪽) 문학평론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문단권력의 주체로 지목된 창비, 문학동네의 편집위원들은 불참했다. 연합뉴스

“대중들의 분노는 무너진 상식에 대한 분노, 아무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이기도 합니다. 신경숙 사태로 시작된 논의는 이러한 대중적 실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서영인 문학평론가)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문제를 논하는 끝장 토론회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가 문화연대 주최로 15일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라톤으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기존 문단권력을 타파하려는 대안적 문학장의 생성에 희망을 걸었다. 문단권력의 핵심으로 지목된 문학동네와 창비 등 출판사들이 빠진 점에서 한계를 남겼지만, 토론회는 ‘문단 바깥’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일본 소설 표절 의혹 제기로 시작된 신경숙 사태는 이를 방조한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 신경숙 작가를 비롯한 다른 많은 작가들의 표절 관행 고발 등으로 일파만파 확산됐다. 1부 ‘신경숙 표절 사태의 진실 찾기’와 2부 ‘문학-출판-잡지 권력의 실체 찾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 일반 독자들의 반응에 의미를 두었다. 다시 돌아본 신경숙 사태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지키기 위한 분노이자 역설적으로 문학에 희망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1부 토론자로 나선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문단 내부 문제를 잘 모르는 대중이 왜 이번 사태에 그토록 분노했는가에 주목하며 이를 “무너진 상식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최근의 메르스 사태까지, 당연하다고 믿었던 진실과 상식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부인되고 무시되는 일이 횡행했다”며 “이런 묵살이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번 사태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2부에서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창비, 문학동네(문동) 등 주류 출판사의 권력화 과정을 짚으며 문학장의 변화 가능성을 조망했다. 그는 현 한국문단 시스템이 위기에 처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한 대중의 공분은 한국 문학의 공공성에 대해 아직 기대가 남아 있다는 의미”라며 “여기서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비, 문동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지식인 공론장을 제공, 이른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번 위기 역시 그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비, 문동을 향해 “가을호 계간지에서 특집기사 두엇으로 ‘뭉개기’보다 지면 개혁과 편집위원 교체 등의 조치로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며 “특히 명예와 진보의 가치에 의존해온 창비는, 1980년대 창비를 폐간시켰던 전두환보다 더 위험한 적이 내부에서 자라나 있다”고 경고했다.

신경숙 작가에 대해서는 가부장적 글쓰기의 문제가 지적됐다. 1부 발제를 맡은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글쓰기, 누가 멍석을 깔아주었나’라는 주제로 사회와 문단의 가부장적 분위기를 꼬집었다. 정씨는 신 작가가 “사회를 탓하기보다 자기 반성을 더 잘하는 작가”라며 “그 과격하지도 불온하지도 않은 목소리가 가부장적인 문단 질서를 전혀 건드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90년대 문단의 총아로 떠오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90년대) 문단은 전쟁에서 피 흘리고 돌아온 남자들을 비난하지 않고 말없이 무릎을 내어주며 고생을 위로해줄 엄마나 아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토론회는 끝으로 문단 시스템의 대안으로 거론돼온 ‘바깥’의 실체를 탐색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주류 출판사가 표상하는 구세력에 맞서는 새로운 문학장의 출현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의미심장하게도, 신경숙 표절이 공론화하기 전 지배적 문화장을 내파하려는 새로운 실험들이 생겨났다”며 문예지 ‘악스트’, 장르전문지 ‘미스테리아’, 웹진 ‘소설리스트’, 이인성 소설가가 출범한 ‘문학실험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생겨난 문인 낭독회 ‘304낭독회’ 등을 구체적 예로 지목했다. 이씨는 이 움직임들에 대해 “개개인의 자발적 힘으로 만들어진 연합들이 구세력을 내파하기는 어렵지만 주류 출판사가 변화하길 바라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라며 대안 문학생산 주체들의 활발한 난립을 지지했다.

문화연대는 이날 토론회에 창비와 문동 진영 비평가들의 참석을 요청했지만 불참한다는 답변을 통보 받았다. 이동연 위원장은 “토론회 구성을 문화연대가 일방적으로 기획하기보다 창비, 문동 편집위원들과 합의할 수 있는 사전 모임을 제안, 모두가 참여하는 3차 토론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정래 소설가는 14일 ‘인터파크 북DB’와의 인터뷰에서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절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표절은 예술가가 목숨을 걸어놓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며 “예술가는 자기의 능력이 부치면 그만 물러가는 게 정도”라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