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데뷔 5년째에 해체되고 만다.'
마치 저주처럼 가요계를 지배하던 말이다. 1990년대 인기를 모았던 H.O.T, 젝스키스 그리고 2000년대 god, 동방신기가 5년의 문턱에서 쓴 맛을 보면서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제 이 공식은 옛말이 됐다. 더 이상 저주에 휩쓸리는 그룹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워낙 많은 아이돌 그룹이 생겨나고 사라져서 '저주'라고 할 만큼 통계적인 가치도 잃었다. 소위 말해 인기 많은 '톱클래스' 아이돌 그룹에겐 오히려 데뷔 5주년을 새로운 기회로 맞이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 왜 5년이었나
불과 5~6년 전만 해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비슷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최고 인기를 달리던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유독 5년을 넘기지 못했다.
1996년 데뷔해 지금의 아이돌 문화를 만든 5인조 그룹 H.O.T.가 시작이었다. 정상을 군림했던 이들은 2001년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이 탈퇴하며 돌연 해체됐다.
1999년 데뷔한 god도 2004년 멤버 윤계상이 팀에서 나가며 흔들리더니 결국 활동을 중단했다.
2004년 데뷔한 동방신기는 2009년 김준수, 김재중, 박유천이 소속사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따로 활동을 시작했다. 김현중의 SS501도 5년 동거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처럼 아이돌 홍수인 시대 이전에는 특출난 멤버가 속하거나 규모 큰 기획사에서 나온 그룹들은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빠르게 주목받은 만큼 이미지 소비도 상당했다. 아무리 다양한 변신을 추구하더라도 4~5집 무렵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대부분 5년째인 시점이었다. 이를 두고 아이돌의 유통기한이라고 흔히들 말했다.
멤버 간 혹은 소속사와 갈등을 견뎌내는 힘도 5년이 고비였다.
한 가요 관계자는 "혼자가 아닌 이상 갈등은 존재한다. 이제 막 인기를 얻거나 상승곡선에 있을 때엔 무슨 일이든 참아내지 않겠나"라며 "하지만 그 상승세가 조금이라도 주춤하거나 피로감의 한계에 부딪히면 서로 폭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5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노련해지고 자신이 최고라는 착각에 가장 빠지기 쉬운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 장수시대, 어떻게 열렸나
그러나 5년의 저주가 무색하게 요즘은 아이돌 '장수시대'다.
슈퍼주니어는 10년째 아시아권에서 톱스타로 대접받고 있으며 소녀시대 역시 8년간 최정상 걸그룹이란 수식어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매달 신곡을 발표하고 음원차트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빅뱅은 데뷔한 지 9년이 흘렀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도 동방신기의 이름을 끝까지 지키며 11년을 끌어왔고, 17년된 신화는 20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생명력의 연장은 국내 활동에만 멈추지 않는 영역 확대에 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따로 앨범을 발매하고, 중화권과 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이나 북중미, 남미까지 진출하는 그룹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음반 홍보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서 좋은 성과를 낸 일은 아주 좋은 홍보 아이템"이라며 "그 성과로 인해 국내에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멤버별 개인 활동이나 유닛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팀의 수명도 자연스럽게 연장되고 있다. 무대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과 성공을 거두고 있다. 새로운 매력을 제시하면서 오랫동안 못박혔던 5년이라는 유통기한을 늘리고 있다.
과거 아이돌 그룹 출신이었던 한 가수는 "우리 때만 해도 개별 활동이 없고 무조건 팀은 하나라는 철학으로 밀어부쳤다"며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면 각자 인기도 격차가 생기고, 하고 싶은 것도 달라진다. 그 것이 또 불화의 원인이 되는데 요즘은 동생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전속계약이나 수익분배 등 소속사와 가수 사이의 명확한 문서화 풍조 역시 소모적인 분쟁을 막는 요소로 꼽힌다. 신인의 경우도 변호사를 대동해 전속계약을 맺는 분위기며, 회사 차원에서 수시로 멤버 부모들과 간담회를 열고 대화를 늘리고 있다.
■ 5년? 이제 시작이다
여기에 과거의 사례가 주는 방어심리가 멤버들 사이에 뿌리 박히면서 팀워크를 흔들지 않는 좋은 요소로 작용되고 있다.
데뷔 5년을 넘긴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는 "인기가 있을수록 더 단련하고 실력으로 인정 받아야 한다"며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데 유지하는 게 실력이다. 지금은 분명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겠지만 10년, 20년 후에도 가능할지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데뷔한 지 꼭 5년이 된 인피니트는 "아이돌 평균 수명이 5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각자 영역에서 맛봤던 재능을 본격적으로 펼쳐갈 때"라며 "우리끼리 팀워크가 좋고 사이가 좋다면 오래 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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