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0시50분”국민애창곡 ‘대전부루스’가 발표된 것이 1959년이니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변했다. 목포 행 ‘완행열차’는 고사하고 이제 대전역에서 목포로 가는 직통 노선조차 없어졌다(KTX 호남선은 오송역에서 공주를 거쳐 익산으로 이어진다). 충남도청은 홍성 내포신도시로 옮겨갔고, 행정중심은 둔산동으로 바뀌었지만 중앙로는 여전히 대전의 중심이다.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까지 약 1km에 이르는 원도심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꿈틀댄다.
시작은 중앙시장이다. 대전역에서 도로 하나 건너면 바로 연결되니 접근성에선 최고다. 중부권 최대 규모의 시장답게 없는 게 없지만 여행객에겐 무엇보다 값싸고 풍성한 먹거리가 최고다. 함경도집(이하 지역번호 042, 257-3371)은 70년 전통의 자부심만큼 커다란 가마솥을 식당입구에 내걸고 구수한 곰국 냄새를 풍긴다. 소머리국밥이 전문이다. 보통이 6,000원이고 고기를 추가한 (특)은 1,000을 더 받는다. 바로 맞은편 서울치킨(221-5333)은 기름이 펄펄 끓는 솥 단지를 2개나 내걸고 번갈아 가며 닭고기를 튀겨낸다. 자르르 소리만큼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항상 몇 명씩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부침개 가게가 즐비한 시장 통을 빠져 나오면 대전천이다. 현대식으로 단장한 은행교에서 상류 쪽에 덮개 장식이 특이한 목척교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숭숭 뚫린 구멍으로 은은하게 조명색깔을 바꾸기 때문에 밤이 더욱 화려하다. 인근의 대전갈비집(254-0758)은 푸짐하게 돼지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이다. 1인분에 돼지갈비는 7,000원, 불고기는 5,000원이다. 38년을 이어온 비결은 역시 박리다매다. 시장에서 좀 떨어진 선화동 광천식당(226-4751)은 대전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40년 전통의 두부두루치기 전문식당이다. 보기만해도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두루치기(2인분 1만원) 하나에 면 사리를 추가하면 2명 식사로는 넘칠 만큼 푸짐하다.
원도심 밤거리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으능정이거리다. ‘은행나무가 있는 정자자리’에서 유래했다는데, ‘은행정자’가 충청도 발음으로는 으능정이 비슷하게 되는 모양이다. 행정지명도 은행동이다. 지금은 은행나무 대신 거리 한복판 천정을 수놓은 초대형(길이 214m, 폭13.3m) LED조명으로 더 유명하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20분간 현란한 영상 쇼가 펼쳐진다. 스카이로드로 이름 붙인 이 시설은 2013년 대전시가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었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실시간으로 문자를 받아 스크린에 내보내는 특별한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
휴대전화가 대중화하기 전 웬만한 지방 도시에서 약속 장소는 그냥‘시내’였다. 부산 남포동, 대구 동성로처럼 대전에서 시내는 ‘으능정이’이고, 그 핵심장소는 성심당이었다.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찐빵집으로 출발한 성심당은 이제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3층짜리 대형건물을 통째로 쓰는 법인으로 성장했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판치는 상황에서도 성심당은 대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1980년생 판타롱부추빵과, 86년생 튀김소보로빵을 사려면 여전히 길게 줄을 서야 하고, 1982년부터 판매한 ‘옛날께끼’도 인기다.
이외에도 중앙로 일대에는 카페 같은 영화관 ‘대전아트시네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양의 대흥동성당, 3대째 붓 명장 ‘일신필방’, 문화예술공간을 겸하는 ‘산호여인숙’, 지역주민의 사랑방 ‘산호다방’등 골목마다 대전의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공간들이 숨어 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변신한 구 충남도청을 먼저 둘러보면 대전 원도심 발품 여행 경로를 짜기에 한결 수월하다.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던 구 도청 건물 자체도 웅장하고 고풍스럽다. “근대문화 명소를 둘러보고 오래된 맛 집을 찾는다면 대전 원도심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윤재진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의 귀띔이다.
대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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