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와 수입이 직결되는 지방대 "성적 낮으면 자퇴… 학생들 잡아둬야"
전문대는 취업률 탓 학점 퍼 줘, 무늬만 학생에 국가장학금도 낭비
수도권 모 전문대 강사인 A(45)씨는 최근 학과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강의에 단 한번도 출석하지 않고, 시험도 치르지 않은 몇몇 학생들에게 낙제점(F)을 준 것을 수정해달라는 요구였다. 학과장은 “학교 사정 잘 알지 않느냐”며 그 학생들에게 A학점부터 C학점까지 분배해 주라고 사실상 ‘명령’했다. A씨는 부랴부랴 학생들에 대한 출석 보고서, 시험을 치렀다는 것을 증명하는 답안지 등 가짜 서류를 만드느라 법석을 떨었다.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한다는 A씨는 “한 강의에 최소 5~6명씩은 출석도 안 하고 시험도 치르지 않는 학생들이 있지만, 성적을 주기 싫어도 줘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학기말 고사를 끝낸 대학가에 가짜로 학점을 만들어주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대학이 학습 의지가 전혀 없는 학생들에게도 점수를 만들어 주면서 정원을 채우고 있는 셈인데, 등록금과 국가보조금에 의존하는 대학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런 학생들에게도 국가 장학금이 지원되고 있어 혈세 낭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방의 한 전문대에서 강의를 맡은 B(43)씨도 학기말 고사 성적 처리를 한 뒤 전임교수로부터 학점과 관련한 지시를 받았다. 15주 내내 결석한 학생들에게 C학점 이상의 성적을 부여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낙제점을 받은 학생 개개인의 이름을 불러 가며 이 학생에게는 A학점, 저 학생에게는 B학점, 다른 학생 2명에게는 C학점을 줄 것을 요구했다. B씨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성적을 줘야 한다는 현실에 기가 막혔다”면서도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맡으려면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이 같은 비교육적 행태를 자행하는 것은 학생수가 대학의 수입과 연결되는 데다 정부의 대학평가와도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 대학의 경우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중도에 자퇴하는 경우가 많아 학과 및 학교 운영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학생을 유지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방의 한 대학 교수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대학 수입과 직결된다”며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한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론 성적을 (가짜로 만들어) 줘서라도 학생들을 잡아둬야 하는 형편”이라고 실토했다. 또 다른 전문대 교수는 “전문대는 취업률이 학교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학생을 취업시키려면 최소 C학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학사 운영에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강사 A씨는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국가에서 일부 학비를 부담하는데 출석이나 시험 응시 여부와 상관 없이 등록을 시켜놔야 지원금이 나온다”며 “일반 학생들도 학업 성취와 무관하게 국가장학금을 받으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을 요구하는데 대학들이 까다로운 잣대를 무조건 들이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교수는 “대학 평가 지표에 중도탈락율, 충원율, 취업율 등이 유지되는 한 이런 탈법적인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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