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아내와 열람정보 베껴
감정평가액·유찰 횟수·근저당 등
한 장으로 요약해 공짜로 뿌려
주변선 다들 망한다고 했지만
무광고·구독료 선불제로 바꿔 성공
법원에 ‘찌라시’를 뿌려 성공한 이가 있다. 우리나라 경매정보업체 1위 지지옥션을 이끄는 강명주(72) 회장이다. 33년 전 신문사를 차리고 싶었으나 돈도 인맥도 없던 그는 당시 깡패 브로커들이 독점한 경매 정보를 빼내 한 장의 소식지로 만들어 법원의 경매 참여자들에게 공짜로 뿌리기 시작했다. 낱장에 경매 물건의 감정평가액, 면적, 경매 일시, 유찰 횟수, 근저당 등이 일목요연하게 다 나와 있는 이 전단은 관련 정보에 목말랐던 사람들에겐 신세계 그 자체였다.
6개월 무료 판매 뒤 유료로 전환했지만 전단은 불티나게 팔렸다. 자장면 값이 350원 하던 시절에 경매정보지를 1,000원으로 받았고 석 달도 안돼 2,000원으로 100% 인상했는데도 ‘정보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그걸 사갔다. 현재 유일한 오프라인 경매 정보지인 주간지 ‘지지옥션’의 전신인 한국입찰경매정보(1983년)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은 오프라인 신문의 하루 매출이 100만원, 온라인은 1,000만원 이상인 탄탄한 기업이 됐다. 부동산 시장과 함께 경매시장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강 회장을 지난 9일 지지옥션 본사에서 만났다.
-30여년 전에 어떻게 경매 정보 신문을 만들 생각을 했나.
“우선 신문사와 인연이 깊다. 1965년 고려대에 입학해 학보사에 들어가 시사만화를 200회 넘게 그렸다. 정권에 저항하는 색채가 강해 철창 신세도 졌는데, 오히려 그러면서 만화는 더 유명세를 탔다. 여러 신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다. 하지만 조직에 몸 담기 보다는 직접 신문사를 꾸리고 싶었다. 신문사 사주의 꿈도 이루면서 초기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경매 브로커가 독점하고 있는 법원 경매 정보를 팔기로 마음 먹었다”
-정보는 어떻게 수집했는지.
“아내와 둘이 서울중앙지법에 가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열람 정보를 베꼈다. 열람 정보는 누구나 볼 수 있었지만 브로커와 법원 일부 경매계 직원의 결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우리는 하루 5~6시간을 눌러 앉아 정보를 베꼈다. 아무도 없는 점심 시간을 몰래 활용하기도 했다. 해당 물건이 근저당이 있는지 세금이 체납돼 있는지 등은 등기소, 동사무소 등을 돌며 취합했다. 그걸 한 장에 요약해 법원 경매 참여자들에게 뿌렸다. 목표는 유료 정보지 판매였지만 반응을 보기 위해 무료로 6개월간 배포했는데 예상보다 더 관심이 뜨거웠다.”
-브로커들의 ‘밥줄’을 위협하는 것이었을 텐데.
“(허허) 맞지만 않았지 온갖 욕은 물론 ‘죽인다’는 말까지 들었다. 당시 경매는 브로커와 이들로부터 뒷돈을 받고 정보를 넘기는 경매계 직원들의 손바닥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장에 내가 나타나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니 그들의 밥벌이가 시원찮게 된 거다. 협박이 먹히지 않자 나중엔 돈을 주면서 회유하기도 했고, 심지어 열람 장부를 찢어 빼돌리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걸 어떻게든 찾아내 우리 정보지 1면에 일종의 특종처럼 ‘누락정보’라고 더 크게 써 붙였다. 끝까지 버티면서 이런 정보를 원하는 일반인 회원과 금융기관, 공공기관들이 늘어나니까 브로커들이 알아서 사라졌다.”
이렇게 아내와 함께 힘겹게 서울 지역 법원과 동사무소에서 정보 수집을 한 지 5년 후인 1988년 지지옥션은 전국에 지사를 두고 20여개의 법원 경매 정보지를 발행할 만큼 성장했다. 함께 고생한 아내는 현재 지지옥션 대표이사로 있고, 어린 시절 경매정보지를 접어 발송용 봉투에 집어넣던 그의 아들(지지자산운용 본부장)과 딸(투자운용 팀장)도 강 회장을 돕고 있다.
-지금껏 고수하고 있는 무광고, 구독료 선불 정책은 무척 파격이다.
“궁여지책이었다. 대형 종합지도 아닌데 광고를 수익원으로 삼으면 회사가 유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특화 정보지라 구독자 수는 1년도 안돼 초기 수십 명에서 수천 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기관들, 즉 은행이나 건설사, 감정평가사 등 알짜 고객들까지 회원이 됐다. 문제는 구독료 수금에서 발생했다. 처음엔 후불제로 걷었는데 전체 회원의 30%만 성실히 돈을 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선불제’로 방침을 바꿨다. 주변에선 망할 거라고 했지만 현재 서울 기준 월 3만원, 1년 26만7,000원을 선불로 내야 함에도 오프라인 회원이 8만여명, 온라인은 17만~20만명에 이른다.”
-직접 경매로 돈을 벌기도 했나.
“1개층 바닥면적이 225㎡인 지하2층 지상7층짜리 지금의 본사 건물을 경매로 샀다. 우리 회사 팀장인 딸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2005년 당시엔 용산역세권개발 바람이 불기 전이라 감정가가 16억8,000만원이었는데 한번 유찰돼 16억원에 샀다. 지금 시세로는 50억원이 넘는다.”
-수익률이 200%가 넘는 셈인데 살 때 기준은 뭐였나.
“세 가지 기준이 모두 충족하는 지 봤다. 첫째 역세권인지, 둘째 대로변에 있는지, 셋째 코너 건물인지다. 상가를 살 때는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낙찰 이후 건물을 용도 변경한 것도 가치를 높이는데 한 몫 했다. 원래 건물은 1층을 비어있는 필로티로 구성해 주차장으로 썼는데 주차장 용지를 인근에 따로 확보하고 1, 2층을 상가로 용도 변경해 임대료 수익을 얻고 있다.”
-2010년부터 지지자산운용을 통해 부동산펀드도 운용하고 있는데.
“경ㆍ공매, 일반 매입 등으로 15개 펀드를 운용하는데 현재 기준으로 연 평균 수익률이 7~40% 나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2층짜리 상가는 펀드로 모인 투자액으로 2011년 감정가(99억원)의 40%에 낙찰 받아 3년 후 청산했는데 누적 수익률이 140%나 됐다. 직접 경매가 부담스러우면 간접경매인 펀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여선애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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