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뭄 달래줄 시원한 빗줄기가 그리운 ‘무늬만 장마’도 야속하게 짧게 지난다. 올 여름은 뜨거운 햇살만으로도 버거운데 극심한 가뭄과 메르스, 그리고 새삼 ‘헌법 제1조’가 상기되는 우울한 분위기다. 그래도 여름휴가는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래서 더 많은 생각들이 겹칠 것이다.
여름휴가 때 대부분은 여행을 떠난다. 평소 자주 가지 못하는 여행이니만큼 언제나 여행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여행만큼 즐거운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 흔히 여행을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고 한다. 건강, 시간, 돈이다. 어느 하나 빠져도 여행을 온전히 누리기는 쉽지 않다. 여름휴가는 대부분 가족이 함께 떠난다.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낯설고 멋진 곳에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 휴식은 달콤하다. 물론 몸은 지칠지 모르지만 평소 가보고 싶었어도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휴가 여행지는 숨통을 트게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여름휴가는 우르르 몰려가 시끌벅적 떠들고 놀거나, 유명한 해수욕장에서 해수욕 즐기거나 관광지 명승지 둘러보는 게 대부분이다. 쉬는 것조차 전투적이다. 한자로 쉴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댄 모습이다. 나무 그늘에서 조용히 앉아 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여유롭다. 이번 여름휴가 중 하루는 그런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휴가 때 이것저것 챙길 것 많지만 이번에는 책 한 권 챙겨가자. 그늘에 앉아 산들바람이나 바닷바람에 몸 맡기고 ‘딱 반 권’만 읽어보자. 한 권 다 읽는 건 부담스러울 수 도 있거니와 비일상적 공간에서 절반을 읽고 일상적 공간으로 돌아가 나머지 절반을 읽으면 같은 책인데도 느낌이나 심지어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아이들도 부모가 휴가지에서 느긋하게 책 읽는 모습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자기도 휴가 갈 때 책 한 권 갖고 가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그러니 휴가지에서 책 읽는 건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절반만 읽고 오자는 건 다른 가족들이나 함께 떠난 동료나 친지들을 위한 배려다. 나 좋다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거니와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건 덜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하며 나름대로 상상도 해보고 추론도 해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휴가지에서 책 읽는 모습 보기 어렵다. 휴가지에서도 바쁘고 요란하며 거칠다. 계곡이라면 개울에 발 담그고 해변이라면 비치파라솔 아래 햇살을 피해 누워 느긋하게 책 읽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전투적인 휴가 풍속의 모습이 이제는 변할 때가 됐다. 아니, 이미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금세 널리 퍼진다. 누구나 꿈꾸지만 정작 그 짧은 휴가 기간에 휴가지에서 책 읽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은 풍속 이제는 작별하면 좋겠다. 그냥 몸만 낯선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낯선 생각의 나를 만나는 것이며 더 좋겠다. ‘쉴 식(息)’은 스스로 심장이 움직인다는 뜻이지만 글 모양을 풀어보면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갇히고 묶였던 일상에서 벗어나 여러 곳 둘러보고 마음껏 뛰노는 것도 좋다. 거기에 조용히 반나절 반 권의 책을 읽으며 또 다른 휴가의 한 토막 즐기는 것도 매혹적이다.
휴가 떠나기 전 대형마트에 가서 이런저런 물건 사기 전에(굳이 도시의 대형마트에서 살 것도 아니다. 돈 조금 더 들더라도 현지에 가서 그곳 시장 물건 사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내가 즐기는 그 공간에 사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배려다)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 몇 권 사서 그 중 어떤 책을 데려갈까 고민해보는 소소한 즐거움부터 누려보는 것도 다솜할 것이다. 책 반 권 읽고 오는 휴가, 보기 좋을 것 같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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