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제품 합성고무 'NB라텍스'
얇고 찢어지지 않아 주원료 자리매김
최대 생산국 말레이·태국에 공급
고급 타이어용 고무 시장서도 두각
합성고무 산업 위기론 '딴세상 얘기'
“고무라고 다 같은 고무가 아니다.”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 고무 연구담당 임원인 고영훈 박사에게 합성고무 산업의 위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NB라텍스’는 의료용 고무장갑의 주원료로 자리 잡으면서 바이어들이 구매를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제품이 됐다. 전세계 의료장갑 생산 1,2위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가 공급될 정도다.
최근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연구소에서 만난 고 박사는 1991년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줄곧 합성고무 분야만 연구한 국내 최고의 고무 전문가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된 보라색 의료용 장갑을 보여주며 두 손으로 강하게 잡아 당겼다. 그는 “얇다고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며 “세게 당겨도 찢어지지 않고 웬만한 화학약품이나 바이러스는 거뜬히 막아 준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 강도는 다른 회사 제품보다 15% 이상 높다. 그렇다 보니 원료를 적게 사용해서 장갑을 얇게 만들어도 잘 찢어지지 않아 전세계 굴지의 장갑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찾고 있다. 덕분에 2010년 7,000톤이었던 생산량이 지난해 16만8,000톤으로 급증해 세계 2위 업체로 도약했다.
생산 초기에 품질이 조악해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수년 간 독자적 연구개발 끝에 품질을 높였다. 지금은 합성고무 산업의 침체 속에서도 큰 수익을 안겨 주는 효자상품이 됐다. 고 박사는“현재 울산공장 생산라인을 완전 가동해도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의 수요를 못 맞출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호석유화학은 내년에 생산 시설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만들 수 있도록 늘려 세계 1위업체로 올라설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용에서 산업용 및 가정용 장갑 시장으로 생산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운도 따랐다. 금호석유화학은 범용 합성고무 분야에서 세계적 업체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지만 2012년 이후 중국과 중동지역에서 물량이 쏟아져 가격이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바람에 범용제품 판매만으론 더 이상 수지를 맞추기 힘들었다.
이때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을 시작으로 신종 플루와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까지 주기적인 전염병의 유행으로 의료장갑에 대한 세계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장갑의 원료를 연구하고 생산에 주력해온 금호석유화학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NB라텍스를 원료로 만든 장갑은 천연고무 제품보다 내구성과 인장강도가 우수하고 색상구현이 뛰어나 향후 10년 동안 고속성장이 예상된다. 고 박사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원료 투입과 산출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연속식 공정’이 적용되고 있어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회사 제품 중에 친환경 고급 타이어에 사용되는 기능성 합성고무 ‘SSBR’ 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SBR이 들어간 타이어는 젖은 노면에서 접지력이 뛰어나고 연비도 향상돼 매년 6% 성장이 예상된다.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뒤늦게 SSBR의 상업생산을 시작했지만 독일의 세계적 타이어회사인 컨티넨탈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등 점유율을 점차 확대해 세계 5위권 업체로 부상했다. 고 박사는 “NB라텍스와 SSBR은 금호석유화학 전체 합성고무 생산량의 20%에 불과하지만 회사 수익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밝혔다.
고 박사는 이처럼 합성고무를 기반으로 한 기능성 제품들이 잘 팔리다 보니 일각에서 우려하는 고무산업 위기론에 대해 부정적이다. 합성고무를 응용한 첨단제품의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는 모든 업체에게 다가오지만 기회는 준비한 업체만 잡을 수 있다”며 “장갑이나 타이어 등 최종제품을 만들지 않지만 한국의 첨단 산업 유전자(DNA)를 심는다는 각오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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