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12년 2월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실시간으로 도ㆍ감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운용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사실은 해당 업체가 해킹을 당해 고객 명단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드러났다. 고객 명단에는 ‘서울 서초구 사서함200’이라는 주소의 ‘한국5163부대’가 해킹팀에 8억6,000여 만원을 지급하고 프로그램을 구입했다고 기재돼 있는데, 이 주소가 국정원 사서함이고 부대는 국정원의 위장명칭인 사실이 밝혀져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국정원이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의 위력은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체제나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모든 인터넷 활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보안이 철저한 구글 이메일이나 외국산 메신저도 이 프로그램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 측이 지난해 해킹업체 관계자를 직접 만나 ‘카카오톡’ 해킹 기술에 대한 진행상황을 물어봤다는 내용의 자료까지 공개됐다. 프로그램 도입목적에 관심이 쏠리지 앓을 수 없다.
국정원은 2005년 ‘안기부X파일’사건을 계기로 휴대전화 도청장비를 모두 폐기했다고 밝혔다. 이후로 단 한 건의 휴대전화 감청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국정원 입장이었다. 그래서 “휴대전화 감청 장비가 없고 통신회사가 협조하지 않아 반국가ㆍ반사회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며 이동통신사 감청설비 의무화 법안을 추진해온 게 국정원이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진 도ㆍ감청 프로그램 구입 사실은 이런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도ㆍ감청을 못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불법 행위를 했으리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현행 법에는 법원의 영장을 받은 휴대전화에 대해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감청장비 도입과 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제가 된 프로그램은 정상적인 감청장비가 아니라 해킹을 통해 정보를 빼내는 불법 기법이다. 국가기관이 임의로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 자체가 불법 행위다.
그러므로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의 구입 여부와 사용처 등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국내 사찰 목적이 아니라 대북ㆍ해외 정보전을 위한 용도”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피해갈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하게끔 공식 설명해야 한다. 일각에선 구입 시점이 대선 직전이라는 점을 들어 선거 이용 가능성도 의심하는 상황이다. 국회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그 동안 불법 사이버사찰이 이뤄졌는지도 분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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