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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조약, 발칸의 삶을 갈기갈기 찢다

입력
2015.07.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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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나 연방이 와해되고 여러 나라들이 분리ㆍ독립하는 과정은 병탄의 전쟁을 겪는 일만큼 불행한 세월을 건너게 하곤 한다. 민족 종교 피부 언어가 뒤얽히면 나라 안은 더 뒤숭숭해지고, 강대국을 이웃에 둔 경우라면 작은 바람에도 국경선은 요동친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스만제국이 와해되면서 독립한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들-세르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등-이 겪어온 시련이 딱 그러했다. ‘발칸화(Balkanization)’는 그 소용돌이 바깥, 다시 말해 3인칭관찰자 시점에서 만들어진 용어지만, 숙원으로서의 독립이 아니라 찢기는 과정과 그 이후의 비극을 지칭하는 말이다.

1878년 오늘(7월 13)일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만제국과 러시아가 독일의 중재로 베를린조약을 맺는다. 앞서 러시아는 오스만제국과 근 100년 간 벌여온 전쟁의 마지막 대전(1877~1878)에서 승리해 산스테파노조약(78년 3월)을 맺는데, 그 조약으로 러시아가 발칸을 장악해 지중해와 대양으로 진출할 거점을 마련하고, 세르비아를 앞세운 발칸 범슬라브주의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유럽 강대국들로서는 범(오스만제국)대신 곰(러시아)을 감당할 현실이 못마땅했다. 베를린조약은 저들 강국들이 러시아를 힘으로 눌러 맺은, 산스테파노 조약의 개정판이었다.

베를린조약으로 불가리아는 자치권을 얻고,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상당한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독립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병합된다. 러시아의 불만이야 당연했을 테고, 발언권도 없이 영토를 빼앗긴 나라들로서도 새로운 국경선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 분노의 에너지가 1885년의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1911년의 이탈리아-투르크 전쟁, 1912~13년의 1,2차 발칸전쟁, 그리고 14년의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한다. 39년 4월 무솔리니(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병합,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를 제외한 발칸 주요국들의 추축국 가입으로 이어진 그 해 9월의 제2차 세계대전도 저 발칸화의 후유증과 무관하지 않다.

이보 안드리치(사진)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김지향 옮김, 문학과지성사)는 오스만제국이 발칸의 맹주였던 400년 전부터 1차대전이 터지는 1914년까지의 저 역사를, 보스니아 비세그라드라는 작은 마을과 (드리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사이에 둔) 인근 마을 주민들이 겪는 이야기로 옮긴 소설이다.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부대끼고, 휘둘리는, 대문자 역사가 드러내지 못하는 발칸의 삶의 이야기가 거기 있다. 1945년 출간된 작품이라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를 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끝 장을 덮고도 이어지고, 이야기 자체보다 더 아린 감상을 남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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