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음악 영화를 만났다. 나는 지금 영화가 아니라, ‘음악’ 영화라고 말했다. 케이블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지만, 나는 영화에 관해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주로 영화 속 음악을 논하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받은 인상들을 어떻게 하면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음악’ 영화만큼은 예외다. 나도 할 말이 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렇게 잘 만들어진 ‘음악’ 영화 앞에서는.
영화의 제목은 ‘러브 앤 머시’. 영화는 1960년대부터 활동해 이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와 밴드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의 인생 궤적을 그려낸다. 따라서 관객들은 그들의 역사에 관한 정보를 좀 알고 영화를 감상해야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지금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가 보여주듯이 비치 보이스가 처음에 주목을 받고 정상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팔할이 ‘서프 뮤직’의 힘이었다. 서프 뮤직은 미국 서부, 구체적으로는 캘리포니아 쪽에서 사랑 받았던 록 음악의 한 형식. 당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흐르던 낙천-낙관주의를 음악으로 옮겨놓은 듯한 만듦새로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그래서 영화는 ‘Surfin’ USA’, ‘I Get Around’ 등, 비치 보이스표 서프 뮤직을 초반에 들려주면서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브라이언 윌슨은 밴드의 현재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서프 뮤직만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투어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맡겨두고, 스튜디오에 들어가 음악적인 실험에 골몰한다. 그의 목표는 당시 격찬을 받고 있던 비틀즈(The Beatles)의 ‘Rubber Soul’(1965) 같은 걸작을 완성하는 것. 멤버들과 주변에서는 반대를 했지만, 브라이언 윌슨은 천재적인 재능과 실력을 발휘해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다. 바로 비치 보이스의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Pet Sounds’(1966)다.
안타깝게도 ‘Pet Sounds’의 초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실패하고, “평론가들과 뮤지션들만 좋아하는 음반”이라는 멍에를 쓰게 된다. 실제로도 그랬다. 심지어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이 앨범의 수록곡인 ‘God Only Knows’를 듣고, “내 인생 최고의 노래”라는 독후감을 남겼지만, 그게 전부였다. 물론 이후 ‘Pet Sounds’와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엔딩을 장식하기도 한 ‘God Only Knows’는 그 진가를 인정받아 상업적으로 거대한 탑을 쌓는데 성공한다. 세월의 검증을 끝마친 클래식이 된 것이다.
음악적인 측면을 영상을 통해 ‘섬세하게 재현’한 것만으로도 ‘러브 앤 머시’는 탁월한 음악 영화라는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영화를 통해 “아, ‘Pet Sounds’를 만들 때, 저런 식으로 작업한 거구나”, 무릎을 탁 치면서 많은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즉,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 관객들에게 ‘음악을 보여주는 것.’ 이 영화가 일궈낸 가장 큰 성취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음악 외에 영화의 키포인트는 브라이언 윌슨의 개인사다. 그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치의였던 유진 랜디(Eugene Randy) 박사와의 사이에 있었던 애증 관계를 대충은 알고 가야 영화가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니 포털 사이트에 ‘브라이언 윌슨 유진 랜디’라고 친 뒤에 대강의 스토리만이라도 꿰고 영화관으로 향하길 바란다. 거짓말 안하고 채 10분도 안 걸린다.
이렇듯 ‘러브 앤 머시’는 공부하는 만큼 더 잘 보이는 영화다. “영화를 보기 위해 공부까지 해야 돼?”라고 반문하지 말기를 바란다. 영화뿐만 아닌 모든 텍스트는 ‘아는 만큼 이해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최고의 음악 영화를 만나기 위한 선택은 결국, 당신의 몫이다.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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