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투자위원회서 비공개로 결정
공적자금 역할 의식한 듯
삼성물산, 지분 최소 31.2% 확보
17일 주총서 엘리엇에 일단 우위
삼성물산 최대 주주로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평가돼온 국민연금공단이 10일 결국 삼성 측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이 ‘백기사’로 나서면서 삼성그룹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 주도의 합병 반대 세력과의 표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날 오후 홍완선 본부장을 위원장으로 내부 투자위원회 회의를 가졌다. 평소보다 긴 3시간 30분 동안의 회의 끝에 투자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연금은 원칙적으로 의결권 행사 내역은 주주총회 이후 공시하도록 한 내부 규정 등을 들어 결정 내용을 즉각 공개하지 않았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결정 내용에 따른 파급력이 크다는 점도 미공개 결정에 고려됐다”고 말했다. 투자위는 이날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외부인사 9인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결권전문위)에 결정권을 위임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했지만 중대한 사안인 만큼 자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이 양사 합병에 찬성하기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공적자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부응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오전엔 의결권전문위 위원인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가 “국민경제 차원에서 봤을 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투자위의 합병 찬성 결정을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로 합병이 무산됐을 경우 "투기자본에 이득을 안겼다"는 맹비난에 휩싸일 수 있다는 부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합병 당사자인 삼성물산(지분율 11.21%)과 제일모직(5.04%)의 주주로서 합병에 찬성하는 편이 투자수익을 끌어올리는 방안이라는 현실적 계산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국민연금은 두 회사 주식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보유하고 있다”며 “삼성물산 주주가치 훼손을 주장하는 엘리엇 측 주장에 동조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 주식이 20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사업인 양사 합병이 무산될 경우 보유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향을 확정하면서 17일 삼성물산 주총에서 벌어질 표 대결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19.98%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그룹은 국민연금이 백기사로 나설 경우 최소 31.2%가량의 합병 찬성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국민연금만 찬성한다면 합병을 확신한다”는 자신감을 내보인 바 있다. 반면 엘리엇(지분율 7.12%)과 더불어 합병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곳은 네덜란드연기금(0.3%),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0.2%) 등 일부 외국인 기관에 불과한 상황이다. 엘리엇은 이날 "국민연금은 의결권전문위에 합병안을 회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합병 찬성을 관철하기 위해 엘리엇보다 두 배의 지분이 필요한 터라 주총 결과를 예단하긴 이르다. 현행 상법상 합병안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을 분류돼 출석주주 3분의 2, 전체 주주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17일 주총의 주주 참석률을 70%로 예상할 경우 삼성은 최소 47%의 찬성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반면, 엘리엇은 자신을 포함해 23%의 지분을 결집하면 합병을 저지할 수 있다. 삼성물산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33% 이상인 상황에서,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의결권 자문기관 ISS가 합병 반대를 권고한 것도 삼성그룹에 부담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도 합병안 통과를 장담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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