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의 신시청사 앞 마리엔 광장. 주변에 노천카페가 즐비하고 곳곳에서 무명 예술가들의 즉흥공연이 벌어지는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붐빕니다. 매시 정각이면 음악이 울리며 인형들이 춤을 추는 시계탑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드는 볼거리입니다.
베네룩스3국을 거쳐 독일로 향한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은 지난 8일 이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를 열었습니다. 이번 여정의 첫 수요시위를 열었던 파리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세 차례 수요시위를 진행한 경험이 있지만, 뮌헨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준비 과정부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우선 독일은 집회신고 절차가 아주 까다롭습니다. 뮌헨에 주소지를 갖고 있는 거주자가 집회신고를 내야 하고 집회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수소문 끝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뮌헨행동’에서 활동하는 교민께서 도움을 주었고, 현장에 나온 경찰관들과의 협의도 잘 조율해 주었습니다.
시위 전날 우리는 캠핑장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캠핑장 입구 공터에서 플래시몹과 캠페인 준비로 하루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현지인 및 관광객들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과 글귀들을 채워 넣을 대형 걸개그림 준비팀은 플라스틱 병을 잘라 물감통을 마련하고 나비부직포, 목공용 풀 등을 꼼꼼히 챙겼습니다. 현장에서 낭독할 성명서와 발언 내용 번역을 담당한 단원들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프랑스에선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시달렸는데 이번엔 비 소식이 걱정거리였습니다. 저녁 무렵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천둥번개와 텐트를 사정없이 때려대는 장대비 탓에 혹여 시위를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모두가 밤잠을 설쳤습니다.
전차를 타고 마리엔 광장으로 이동할 땐 다행히 그쳤던 비가 집회신고를 낸 오전 10시가 되자 다시 찾아 들었습니다. 우왕좌왕하고 있는 희망나비들을 향해 김형준 평화기행단장이 외쳤습니다. “비가 오고 있습니다. 비가 얼마나 올지, 혹시 그칠지 우린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스스로를, 서로를 믿고 파이팅 합시다!”
경찰관들은 하늘을 가리키며 “진짜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방긋 웃음으로 답하고는 힘차게 평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시계탑 인형춤을 보기 위해 몰렸던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쪽으로 다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기꺼이 서명을 해 주거나 대형 걸개그림 작업에 동참했습니다.
오전 11시. 우리는 수요시위를 여는 노래 ‘바위처럼’을 부르며 뮌헨 한복판에서 첫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촬영을 담당했던 친구는 쏟아지는 빗줄기에 개의치 않고 즐겁고 당차게 율동을 하는 단원들 모습이 마치 하나의 바위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멀리 일본에서 날아와 파리 수요시위에 동참했던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간사이네트워크’의 오쿠다 가츠히로 공동대표가 이번 시위에도 함께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오쿠다 대표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현재 일본정부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기는커녕 부정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며 교활하게 평화헌법의 내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려 하고, 영향력이 큰 언론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하며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왜곡을 일삼고 있습니다.”
단원들은 손에 들고 있던 피해 할머니들 사진을 적시는 빗물을 연신 닦아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다시 내리치는 빗물이 마치 할머니들이 평생 흘렸을 피눈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수요시위가 열리기 이틀 전, 또 한 분의 피해 할머니가 가슴 속 한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올해만 벌써 일곱 분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48명뿐인 생존 피해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더 크게 외쳤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
궂은 날씨 탓에 몸은 힘들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 빗속에서도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흔쾌히 펜을 들어 세계 1억인 서명운동에 동참해 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감동의 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어르신은 “이미 굳어가고 있는 유럽사회에서 이런 인권과 정의의 외침을 들려줘서 고맙다. 여러분의 활동이 인류의 미래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중국계 캐나다인은 “중국과 다른 아시아 지역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활동하는 건 한국 학생들밖에 보지 못했다”면서 “정말 용기 있는 젊은이들”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이런 활동이 중국에도 많이 알려져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2차대전 당시 일본군 해군장교였다는 한 분은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돈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는 돈을 사양하고 대신 내민 서명용지에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고 주변에 많이 알려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래 젊은이들의 호응도 이어졌습니다. 평화 캠페인을 지켜보던 독일 대학생은 “감동했다”면서 뒤이어 진행한 수요시위에 동참해 맨 앞줄을 지켰습니다. 여행 중이라는 한국인 대학생은 초콜릿과 음료수를 사다 안기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도 자신의 점퍼를 벗어 시위 현장을 촬영 중인 카메라를 덮어주거나 단원들에게 우산을 씌워주었습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날의 경험이 남은 평화기행을 더 당당하게 이어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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