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삭감ㆍ부가세 추가 부가 등 채권단 요구 대부분 수용하고
재정지출 감축도 합의안보다 커… 535억유로 구제금융 지원도 요구
채무탕감 반대 獨 입장변화 조짐, 유럽정상들 12일 지원 여부 결정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9일 고강도의 최종 개혁안을 채권단에 제출했다. 최종 개혁안은 채권단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데다 재정지출 삭감 규모도 채권단과의 기존 합의안보다 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은 한층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10일 그리스 일간 나프템포리키가 공개한 그리스 개혁안 전문에 따르면 가장 큰 변화는 연금 삭감이다. 정부는 현재의 연금체계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0.25~0.5%, 내년 GDP의 1%를 절감할 수 있는 연금 개혁안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기존 채권단 안과 동일한 내용으로, 지난달 30일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를 앞두고 제시한 수정안에서는 거부했던 내용이다. 또 사회연대보조제도(EKAS)에 따라 저소득 노령자에게 지급하던 추가 연금을 2019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이 중 소득 상위 20%에 대한 지급은 내년 3월부터 당장 폐지하기로 했다.
또 다른 쟁점이던 부가가치세 추가에서도 그리스는 채권단 요구를 수용했다. 정부는 음식점에 대한 부가세율을 13%에서 23%로 상향 단일화하기로 했으며 도서지역 부가세율 인하는 폐지하기로 해 종전 수정안에서 후퇴했다. 국방비 역시 올해 1억유로, 내년까지 2억유로를 감축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2년간 재정지출을 130억유로(약 15조1,000억원)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그리스가 앞서 채권단과 큰 틀에서 합의했던 79억 유로(올해 27억유로, 내년 52억유로)보다 50억유로 이상 많다.
채권단의 협상안을 국민투표로 거부했던 그리스가 더 강도 높은 긴축 개혁안을 들고 온 것은 국가 부도의 위기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분석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주 간의 은행영업 중단으로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부도를 막을 다른 선택 여지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는 이날 개혁안과 함께 채권단에 535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 요구를 전달했다.
한편 치프라스 총리가 긴축안에서 대폭 양보한 것은 그 대가로 채무탕감 또는 재조정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란 관측도 있다. 가디언은 “치프라스 총리가 채무탕감의 반대급부로 백기투항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도 “치프라스 총리는 그의 제1목표였던 채무경감에서 어느 정도 협상의 기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채무탕감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던 독일도 입장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9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통적 헤어컷(채무탕감)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며 ‘전통적’이란 단서를 붙인 점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역시 채무탕감 반대론을 주도하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그리스 채무의 지속가능성은 헤어컷 없이는 타당하지 않으며 IMF의 채무경감 검토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혁안은 10일 그리스 의회 승인이 첫번째 고비다. 가디언은 “집권 급진좌파연합(시리자)내 강경파뿐 아니라 노동조합, 청년그룹 등으로부터 만만찮은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야당이 개혁안에 찬성하고 있어 의회 승인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12일 유럽연합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그리스의 최종 개혁안을 검토한 후 구제금융 지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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