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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양봉(養蜂) 인문학’

입력
2015.07.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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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꽤 됐다. 여기저기서 인문학이다. 혹자는 붐이라고도 하고 타령이라고도 하며 한편에선 그래서 더 위기라고도 한다. 반응은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전에 비해 인문학이 ‘어찌됐든 호황’이란 사실이다.

자본주의사회 특히 우리 사회처럼 돈이 삶의 목표요 최고의 덕목인양 추앙되는 곳에선, 무언가가 호황이라 함은 그것이 금전적 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된다. 곧 호황을 누리는 인문학은 쏠쏠한 돈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여 기업에서조차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전문인력을 양성하라고 대학을 압박한다. 그럼에도 대학에선 왜 관련 학과를 없애고, 학생들은 왜 또 인문학을 기피하는 것일까.

하기야 사회 전체 차원에서 돈벌이가 된다고 하여 개인에게도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문학이 돈은 되는데 그 돈을, 인문학을 접한 모두가 다 가지게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기업의 부가 증대됐다고 하여 사원 모두가 형편이 나아지는 건 아님과 같은 이치이다. 부가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니, 국민은 가계 빚에 허덕여도 국부는 증대되고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언론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10대 그룹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전년 대비 40조원 가까이 늘어 500조원을 돌파했다). 인문학과 돈벌이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그 수익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인문학이 부의 편중을 강화시켜주는 모양새가 됐음이다. 대체 어쩌다 인문학이 이 지경에 처했을까?

답은 명료하다. 호황을 누리는 인문학이 ‘양봉(養蜂)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인문학이 거듭 소환되는 까닭은 자율이나 창의, 배려 같이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량을 갖추는 데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변질된’ 자율이요, 창의, 배려이다. 조직의 장이 설정한 범위나 그의 기호, 이념적 지향 등을 자율적으로 넘어선 창의는 곧잘 부정된다. 진리나 양심, 사회적 약자 등을 배려했다간 본인이 소수자가 되고 만다. 그건 자율이나 창의, 배려가 아니라 불순함으로 치부된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인문학은 그저 문제되지 않는 수준에서 조직에 더욱 이익이 되게끔 알아서 처신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창의성과 배려심 등을 갖춰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조직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불의나 악(惡)에게도 알아서 ‘배려’해주는 그런 ‘창의적’ 능력 말이다.

하여 인문학이 각광 받을수록 사회와 사람은 인문적이지 않게 된다. 현장에선 인문학의 이름으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만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으로 헌신하라고 주문한다. 단지 꿀만 따오면 되는 일벌이어선 안 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꿀을 따올까를 생각할 줄 아는 ‘인문학적 일벌’이 되라고 요구한다. 단 생각할 줄 안다고 하여 ‘왜 난 여왕벌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여왕벌은 일도 않는데 어찌 로열젤리를 먹을까’ 같은 물음을 생각해내면 절대 안 된다. 그런 사유의 능력은 불온하다며 비판된다. 이것이 호황을 누리는 인문학의 실상이다. 더 많은 꿀의 획득을 위해서만 생각하며 일을 하는 ‘몽유(夢遊)적 일벌’의 구성을 위한 양봉 인문학 말이다.

문제는 양봉 인문학이 기업이나 사주를 살찌울 수는 있을지언정 개인을 결코 행복하게 만들진 못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국가 차원에서도 별 도움이 되질 못 한다. 경제력에선 선진국에 비견될지 몰라도 그 외 부문에선 선진국 문턱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고나 할까. 삶의 모든 방면에서 스스로를 선진국 수준으로 견인해내지 못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처지이다.

그래서 자율과 창의 같은 역량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는 ‘인문학적 일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문학적 사람’이란 것이다. 양봉 인문학으로 그런 자율적이고 창의적 존재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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