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안 나와 서른 넘어 접해, 10년 간 홀로 학살의 역사 기록
"목격자들 세상 뜨며 맘 조급해져"
“대학 공부까지 했는데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서른 넘어서야 알게 됐습니다.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은 내용이니 어찌 알 수 있었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묻힌 사실을 뒤늦게나마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6ㆍ25전쟁이 낳은 여러 비극 중 하나가 국민보도연맹(보도연맹) 학살 사건이다. 보도연맹은 정부가 1948년 남한 내 좌익세력을 전향시켜 교화한다는 목적으로 만든 반공단체였는데 개전 직후 엉뚱하게도 살생부 역할을 했다. 전쟁과 더불어 북한군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좌익인사들이 집단 학살을 당했고 자기도 모르게 보도연맹에 가입됐던 애먼 사람들까지도 희생됐다. 수십만 명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목숨을 잃었으나 아직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9일 개봉한 영화 ‘레드 툼’은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보기 드문 다큐멘터리로 역사의 비극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레드 툼’은 인터넷언론 ‘민중의 소리’의 기자로 활동 중인 구자환(48) 감독이 10년 가량 홀로 촬영하고 편집해 완성한 작품이다. 구 감독은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 규명되지 않고 잊히게 될까 우려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널리 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하소연도 연출의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구 감독은 2004년에야 보도연맹 사건을 알게 됐다. “마산시 진전면에서 사람 유골이 대대적으로 발굴된다는 말을 듣고 취재에 나섰다”가 보도연맹 사건의 실체와 처음 접했다. 구 감독은 “취재를 해보니 참혹하고 학살의 규모도 컸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반세기 가량 묻혀 있던 이야기를 유족들을 만나 듣다 보니 눈물이 나오고 가만 있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영화와는 전혀 무관했던 그는 이후 경남 지역 곳곳을 돌며 보도연맹 희생자 유가족의 회한과 학살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영상에 담았다. 2004~2006년까지 집중적으로 촬영했으나 제작비 조달 등의 문제 때문에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는 2010년 경남도가 시행한 학살 매장지 조사사업의 조사원으로 참여했다가 “더 늦어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만났던 많은 목격자 등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고 마음이 조급해졌고 다큐멘터리 제작의 고삐를 좼다. 2013년 편집까지 마쳐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해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촬영과 편집 등 모든 작업을 혼자 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종북으로 괜히 몰릴 수 있으니 누가 관심을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돈도 없고 팀도 꾸릴 수 없었으니 힘들 수 밖에요.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점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습니다.”
영화를 완성하고 개봉을 하기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도움이 컸다. 후반작업 비용이 없어 SNS에 호소하자 지역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 개봉을 위한 모금 호소 글을 SNS에 올리자 45일 동안 940만원 정도가 모였다. 구 감독은 “학살이 이뤄진 7월에 꼭 개봉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며 “모금액은 이미 소진되고 개봉을 위해 내 신용카드까지 사용했다”고 말했다.
‘레드 툼’은 학살이 이뤄졌던 장소, 집단 매장지 등을 꼼꼼히 영상에 기록했다. 기교가 뛰어난 다큐멘터리라 할 수 없으나 남들이 외면해온 역사의 이면을 뒤늦게나마 기록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구 감독은 “개봉을 통해 보도연맹 사건을 다시 알리고 싶었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나왔으니 극영화 만드는 분들이 사건을 더 많이 알려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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