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냉면
측천무후 입궁 전 먹었다는 전설, 소고기 육수에 깨소스 가미해 별미
초계탕
닭고기 특유 담백한 맛 일품, 식초와 겨자 새콤한 미각 자극
냉우동
대부분 면과 소스 분리돼 나와, 소스 절반만 찍어야 더 맛있어
남들이 평양냉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기뻐하는 계절, 홀로 외로운 이들이 있다. 필동면옥과 을지면옥과 우래옥을 오가며 평양냉면 3대 천황의 지존이 누구인지 설전을 벌이는 것을 들으며 ‘이것이 진정 완성된 음식의 맛이란 말인가’ 회의하고 있는 당신. ‘필시 수돗물에 면발을 헹구다 깜빡 잊고 그냥 내온 걸 거야’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자.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즐길 줄 알아야만 미식가인 것은 아니다. 땅콩버터의 고소함과 겨자의 톡 쏘는 맛이 쇠고기 육수 안에서 오묘한 화학적 결합을 보여주는 중국냉면도 있고, 개운한 닭 육수에 새콤한 식초와 겨자를 가미한 한국 궁중요리 초계탕도 있다. 쫄깃한 우동면을 시원한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일본의 냉우동은 또 어떤가. 세계는 넓고, 냉국수는 많다. 한ㆍ중ㆍ일 세 나라의 시원한 여름국수로 삼국지를 써보자.
측천무후의 이별이 빚은 국수: 중국냉면
국수 문명의 발상지 중국에 차게 먹는 냉면이 처음 등장한 것은 당나라 때다. 8세기 시인 두보의 시에 이미 괴엽냉도(槐葉冷淘)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청색의 괴나무(회나무) 이파리를 갈아 만든 차가운 국수라는 뜻이다. 문헌으로 진위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중국 냉면은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의 ‘작품’이라는 낭만적인 설화가 떠돈다.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 메일에 따르면, 14세에 당나라 고종 황제의 무수리로 궁에 들어간 측천무후는 입궁 전날 연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냉면이라는 의도치 않은 발명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별의 슬픔으로 정신이 산란한 나머지 뜨거운 국수에 혀를 덴 소녀. 연인은 급히 국수를 식히러 바깥으로 나가고, ‘찬 국수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탄식하는 훗날의 여황제를 위해 식당 주인은 뜨거운 국물을 따라버리고 아마도 소스였을 새콤달콤한 무언가에 찬 국수를 비벼 내온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냉면은 ‘물냉’이 아닌 ‘비냉’이었던 것.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냉면에 너무 기쁜 나머지 측천무후는 연인을 꼭 껴안았고, 이를 본 식당 주인은 애달픈 어린 연인을 달래기 위해 이 냉면의 이름을 ‘부부면’이라고 붙였다. 훗날 황제가 된 소녀는 매년 생일마다 이 부부면을 내오게 해 오래 즐겼다는 전설이다. 당시에는 쪄낸 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어 ‘여황증냉면’이라고도 불렸다. 차이나 메일은 “이 전설의 진위는 의심스러운 바가 있지만, 측천무후 치하의 당대에 냉면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도 푹푹 찌는 여름철의 해독제로 많은 중국인들이 즐기는 음식임에는 틀림 없다”고 보도했다.
‘물냉’의 형태로 보편화한 우리나라의 중국 냉면은 화교들의 국내 정착과 역사를 함께한다.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 조리팀의 장금승 부장은 “간단히 해먹는 화교들의 가정식이었던 중국 냉면은 20여년 전 중식당의 메뉴판에 오르며 국내에서 대중화됐다”며 “본토에서는 비빔냉면의 형태가 보편적이지만,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는 과정에서 물냉면의 형태로 정착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물까지 벌컥벌컥 들이키는 면탕은 중국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는데, 산시성의 소고기탕 냉면이 맑은 국물에 담가 먹는 우리나라 냉면과 비슷한 맛이라고.
밀가루 100%로 만드는 중국냉면의 반죽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친다. 쫄깃한 식감을 위해 짜장면이나 짬뽕면보다 훨씬 더 치대는 작업이 길어 ‘비법’을 알아도 따라하기 힘든 게 이 반죽이다. 팔선의 중국냉면은 한우 양지로 육수를 내는데, 사실 소고기 육수에는 냉면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땅콩버터나 깨소스를 가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고기 육수의 깊고 시원한 맛에 새우 등 해산물의 짭조름한 맛, 땅콩버터의 고소한 맛, 겨자의 톡 쏘는 맛, 식초의 새콤한 맛이 어우러져 미각의 오케스트라가 빚어진다. 여기에 단단한 조직감을 가진 쫄깃한 면발까지. 중국냉면의 인기는 7, 8월 계절특선 메뉴였던 이 음식을 6월부터 팔선의 식탁 위에 올려놨다. 단품(2만9,000원)은 물론 코스요리의 식사로도 80%가 넘는 손님들이 냉면을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궁중의 위엄으로 우아하게: 한국 초계탕
본래 이북 음식이었던 한국 냉면은 고려시대 몽골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에 의해 남한에 퍼지게 된 냉면처럼 초계탕도 이북, 특히 평안도 지역에서 주로 먹던 음식이다. 닭고기와 쇠고기를 함께 넣어 만든 맑은 육수에 동치미를 섞어 만드는 냉면과 달리, 초계탕은 닭 육수에 참깨와 잣을 갈아 국물을 만든다. 조선시대 의궤나 조리서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궁중의 대규모 행사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먹었던 귀한 음식이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도 초계탕을 먹은 기록이 있다. 현재 우리가 먹는 초계탕은 소면을 국수로 사용하지만, 밀가루가 귀했던 조선 시대에는 메밀면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닭 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초계탕은 닭고기의 살을 결에 따라 찢어 고명으로 올린다. 뼈를 발라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 궁중에서 품위 있게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한 요리다. 식초에서 ‘초’자를, 겨자의 평안도 사투리인 계자에서 ‘계’자를 따와 초계탕이라고 부르는데, 초계국수로 더 많이 불린다. 닭고기 특유의 담백한 맛과 참깨의 고소한 맛에 식초와 겨자의 새콤함이 곁들여져 더위에 지친 미각을 시원하게 자극한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전통문화복합공간 한국의집은 여름특선으로 궁중조리법을 반영해 만든 초계탕(2만5,000원)을 선보였다. 초 대신 깨와 잣을 사용해 구수한 맛이 강하다. 김도섭 조리장은 “깊은 맛의 전통 초계탕은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기 위해 궁중에서 먹었던 품격 있는 요리”라며 “냉면보다 맛이 진하고 시원할 뿐이라 다른 국수가 따를 수 없는 감칠맛이 난다”고 말했다.
‘부먹’ 말고 ‘찍먹’: 일본 냉우동
일본의 여름 국수는 좀 특이하다. 찬 다시 육수에 ‘일체형’으로 담겨 나오는 붓가케 우동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여름국수가 디핑 소스에 찍어먹는 ‘분리형’으로 제공된다. 부어먹는 ‘부먹’ 타입이 아니라 찍어 먹는 ‘찍먹’ 타입. 간장을 베이스로 한 츠유소스가 보편적이라 그릇째 벌컥벌컥 들이키며 먹기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여름국수로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음식은 메밀국수인 자루소바지만, 뜨끈한 국물을 저절로 환기시키는 우동도 차갑게 먹을 수 있다. 일본 3대 우동인 사누키, 미즈사와, 이나니와 중 국내에 잘 알려진 사누키 외에 이나니와 우동이 올 봄 국내에 상륙했다. 서울 을지로에 1호점을 낸 ‘이나니와 요스케’에서 냉우동을 맛볼 수 있는데, 꽈리를 튼 탱탱한 우동면에 다시마와 가츠오부시 국물을 베이스로 한 간장 츠유와 참깨미소 츠유 두 가지가 디핑소스로 제공된다. 가격은 8,000~9,000원선.
이나니와 요스케 허나경 점장은 “차게 먹는 우동면의 식감이 더 쫄깃하고 좋아서인지 온우동보다 냉우동의 인기가 더 많다”고 말한다. 다만 “일본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소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짜게 느껴질 수 있다”며 “면은 절반만 소스에 담가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면의 두께가 가장 굵은 우동면답게 밀가루의 맛은 강한 반면 고명이라 할 만한 부재료는 별로 없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때는 튀김류가 같이 나오는 ‘텐푸라 세이로’ 메뉴(1만2,000~1만5,000원선)를 선택하면 좋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