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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놀 생각입니다

입력
2015.07.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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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놀이다. 놀이로 시작해서 놀이로 끝난다. 하지만 노는 일이, 잘 노는 일이 해보면 만만치가 않다. 당연히 남들이 봐야 하니 오락뿐만 아니라 값나가는 주제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놀이를 떠나서 주제를 주입하려 들면, 대번에 무너진다. 놀이의 아름다운 진짜 가치를 구현하는 일은 연극인에게는 두고두고 숙제다. 만일 싫증이 난다면? 더는 못 논다. 그러면 그만 두고 제 갈길 간다. 놀이는 끝. 그래서 놀이는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재미가 없으면 놀이가 아니니까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이미 놀이가 아니므로. 놀이거나 놀이가 아니거나.

연극을 통해 보는 세상의 진리는 아무리 봐도 그거나 그거다. 사랑해도 아프고 미워해도 고단하다. 직장인도, 백수도 힘들다. 부모나, 자식이나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칭찬이나 비난이나 평등하게 불편하다. 노동이나 잠이나 한 가지만 하다 보면 둘 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적당히 섞는다. 주말도 두고 금요일에는 불도 낸다. 그래야 평일을 또 견딘다. 그래서 노는 일은 대충 보아 넘길 것이 아니다. 재미나게 일을 하고 싶어 고민이라면 노는 방법부터 찾으시라.

그런 내가 마수에 걸려들었다. 열심히 일을 하느라 기력을 탕진 중이다. 밤중에 스태프들과 절박하리만큼 심각한 미팅을 끝냈다. 극장의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기름이 빨간 불이다. 셀프 주유소에서 빈 기름통을 채우다가 문득 깨달았다. 손잡이를 꽉 쥐니까 안 들어가고 꺼지더라는. 살살 잡아야 했다. 악력이 좋다고 기름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쥐다가 말다가 재미삼아 놀다 보니 기름이 다 들어갔다. 꼭 쥐려 하니 되는 것이 없었다. 어느 새 일 중독. 옛날의 셀프 주유소도 물론 그랬다. 꽉 쥐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다시 꼭 쥔 채 어느새 다 까먹고 있었다.

놀이가 재미가 없다면? 쉽게 하는 말로 일이 된다.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 되고 만다. 물론이다. 일을 해야 먹고 산다. 놀면 못 먹고 산다. 베짱이는 그래서 한 겨울에 망했다. 하지만 열심히 일을 해야만 잘 먹고 산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 하루 세 시간 자고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자수성가를 했다면 과연 사람다운 삶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개중에는 있겠으나 대개는 아니다. 그렇게 일만하고 산 사람이 주변과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을까? 나중에 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는 것!

부끄럽지만 배우들한테도 끊임없이 하는 말이 다 내려놓고 놀자였다. 놓아야 놀 수 있지 않은가. 붙잡고서야 어떻게 노나. 그런데 정작에 나는 그렇게 안 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요새 매우 큰 공연을 준비 중이기는 하다. 부담이 많기는 해도 여태까지는 버텨 왔다. 공명심 따위도 초저녁에 해치웠다. 하지만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극장에 들어서자 불현듯 내 고삐를 그것도 선명하게 죄어왔다. 단순해져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복잡하면 가짜 아니던가.

다시 초심으로 가서 놀아보련다. 열심히 하지 않으련다. 열심히 하니까 복잡해졌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놓아야 한다. 놓고 놀아야 한다. 그 안에 무조건 답이 있을 것이다. 내일도 아침부터 태산 같은 일들이 밀려있다. 오늘의 회의 분위기로 봤을 때 심각할 게 뻔하다. 하지만 간단히 내려놔 볼 작정이다.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 무엇인가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슬슬 놀이를 시작해봐야겠다. 무책임하다는 말, 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거나 그거나. 해법이 생길 것이다. 내일 기적처럼 정리가 될 것이다. 맞다. 내가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논다면 그리고 그 놀이가 나쁘지 않다면 놀이는 모두의 놀이가 되어 반짝반짝 생기를 돌게 할 것이다.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었는데 왜 아니겠나. 기꺼이 놀아보자!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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