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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한 보복운전… 평범한 시민이 전과자로

입력
2015.07.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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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6월 서울서 100건 적발

가해자 절반 이상이 일반 회사원

보복ㆍ난폭운전 신고 500건 증가

사회 불만을 개인에 분노로 해소 "규제 강화와 치유 차원 접근 필요"

지난 5월 3일 서해안고속도로 일직분기점 부근. 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A(34)씨는 차선 변경을 시도했지만 옆 차선을 타고 달리던 경차 운전자 B(36)씨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자 무시당한 것 같아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A씨는 B씨를 2.7㎞나 따라가며 갓길로 밀어붙이거나 빠른 속도로 앞질러 간 뒤 고의로 서행하는 방식으로 보복운전을 했다. 일가족 3명과 함께 타고 있던 B씨는 이 같은 사실을 국민신문고에 신고했고, A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전과도 없었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30대 회사원이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보복운전은 A씨처럼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도로 위의 범죄였다. 경찰청이 8일 내놓은 4~6월 서울 시내 보복운전 집중단속 결과를 보면 100건이 적발돼 총 103명이 불구속 입건됐는데, 가해자 절반가량(53명)이 회사원이었다. 택시기사 등 운수업 종사자(34명)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 보복운전 원인도 진로변경(53%)ㆍ끼어들기(23%)ㆍ양보운전 불이행(10%) 시비 등 운전대만 잡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대화로 풀 수 있는 사안들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가해자를 붙잡고 보면 전과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라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보복ㆍ난폭운전 신고건수는 지난해 5월 929건에서 1년 만에 1,49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보복운전이 급증한 배경에 ‘분노조절 장애’와 같은 한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보복운전도 일종의 범죄인데 사회나 대인관계에서 좌절감을 느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공격적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며 “특히 요즘처럼 먹고 사는 문제가 힘겨울 때 비난 대상을 찾으려는 심리가 강해진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개인에게 분노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불공정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하게 대우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한 느낌과 생각이 공동체나 조직에 대한 불만을 낳고, 이 불만이 쌓이면 결국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갑작스러운 분노 표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층 치열해진 경쟁 구도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17일 서울 고속터미널 인근에서 발생한 보복운전은 승객을 서로 태우려던 택시운전기사들의 다툼이 원인이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모든 걸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 무한경쟁이 화두가 되다 보니 화를 참는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경찰은 보복운전의 심각성을 인식해 10일부터 다시 특별단속에 들어갈 계획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보복운전은 차량을 흉기로 활용한 불법성이 강한 범죄”라며 엄단 방침을 내비쳤다. 그러나 단속과 규제 강화 등 하드웨어의 정비 못지 않게 개인의 분노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치유 차원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 관계자는 “법규를 강화하면 일시적 효과는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민의식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한 행복찾기정신과의원 원장은 “보복운전을 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엄한 규제는 필요하다”면서도 “내가 보복ㆍ난폭운전을 하면 상대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배려의 감정을 운전자들이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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