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사망한 지 21년이 되는 날이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이날 자정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군 고위간부들과 함께 김 주석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20주기로 이른바 ‘꺽어지는 해’였던 지난해보다는 행사분위기가 차분했다는 보도다. 그러나“대원수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온 나라 강산에 굽이치는 7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은 뜨거운 추억으로 젖어 들고 있다”(노동신문) 등 북 매체들의 추모 분위기 띄우기는 여전했다.
▦ 사망 후 사반세기가 다 되가는데도 김일성은 여전히 북 체제의 중요한 버팀목이다. 무엇보다 손자 김정은의‘할아버지 따라 하기’가 이를 잘 입증한다. 옆머리를 바짝 치고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 어깨를 젖힌 채 걷는 모습, 연설 억양 등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 하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향수를 자극한다. 근로자, 병사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애민(愛民)을 강조하는 것도 김일성 스타일이다. 젊은 후계자 체제를 단기간에 안정시키기 위해 치밀히 계획된 이미지 연출일 것이다.
▦ 그런 이미지 연출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흉내조차 못 내는 분야가 있다. 외교다. 김일성은 1960년 대 중ㆍ소 분쟁 와중에 양국을 잇따라 방문해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고, 이후 능란한 등거리ㆍ줄타기 외교로 경제와 군사원조를 이끌어냈다. 비동맹외교에도 수완을 발휘했고 1984년에는 3개월 동안 동구사회주의 국가를 순방하기도 했다. 아버지 김정일은 그에는 못 미쳤지만 중국과 소련을 넘나들며 실리를 챙겼다. 유일 패권국 미국과도 밀리지 않은 외교를 펼쳤다.
▦ 그런 할아버지 아버지에 비해 김정은의 외교는 시쳇말로 족탈불급이다. 아버지 3년 탈상을 끝낸 올해 초만해도 김정은의 외교무대 데뷔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지구촌의 관심을 모았던 5월 러시아 전승절 행사 참석은 불발로 끝났다. 9월로 예정된 중국의 전승기념행사 참석도 지금 분위기로는 성사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집권 4년 차인데도 정상회담 한번 갖지 못했다. 남북관계도 전혀 진전이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괴이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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