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안보의 최전선이다. 고려후기에는 대몽(對蒙)항쟁으로 이름을 날렸고, 구한말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의 전쟁을 치르며 서구열강과 맞선 곳이다. 지금도 강화도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이다. 그런 만큼 해안을 따라 곳곳에 병영기지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돈대(墩臺)다. 사전적 의미는‘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인데, 요즘으로 치면 방어진지나 초소에 해당한다. 해안선을 따라 설치한 53개 돈대를 연결하면 강화를 한 바퀴 도는 셈이다.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 염하 주변 돈대
울퉁불퉁한 타구(楕球)를 통해 보는 물길이 한가롭다. 타구에 자리해야 할 대포(모조품)도 깔끔하게 정비한 벽돌 담장 안에서 목표물을 잃고 평화롭다.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지나 좌회전하면 바로 보이는 갑곶돈대 풍경이다.
김포와 강화도 사이 폭 1km 안팎, 길이 20km에 이르는 강화해협은 어엿한 바닷길이지만 강화에서는 염하(鹽河)로 부른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서해에서 한강을 따라 서울과 개성을 잇는 가장 짧은 해로이기 때문에 전라도 충청도에서 온 세곡선도 이곳을 통과했다. 그 중요성으로 대대에 해당하는 강화도의 5진(鎭)이 모두 염하를 내려다보고 설치됐다. 진은 규모가 작은 7개 보(堡)와 함께 3~5개의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53개 돈대 중 48개는 병자호란 이후 숙종 때인 1679년까지 설치됐고, 그 후에 5개가 추가됐다. 지금 모습은 1970년대 강화 전적지 정화보수사업 이후 복원한 형태다.
갑곶돈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서 광성보까지 10km 남짓한 구간에 용진진과 용당·화도·오두돈대가 자리하고 있으니 평균 2km에 하나씩 돈대가 설치된 셈이다.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격전지였다. 광성돈대에서 손돌목·용두돈대까지 깔끔하게 정비된 산책로 중간쯤에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와 묘가 자리잡고 있다. 사망자 수 350 대 3, 조선의 일방적 패배였지만 미국도 끝내 개항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 승리라 주장하지 못하는 전쟁이었다. 남한 땅에서 대한민국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전쟁 유적을 보는 기분이 묘하다.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에서도 가장 물살이 센 손돌목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았다. 임금을 태우고 험한 물살을 건너다 ‘왕을 해하려 한다’는 오해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뱃사공 손돌의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깔끔하게 정비된 돌담 안에 파란 잔디까지 깔려있어 원형극장에 들어선 듯하다.
모든 돈대가 모양이 같지는 않다. 해안선에서 살짝 솟아오른 언덕에 자리잡았으니 지형에 따라 정사각형도 되고 사다리꼴도 된다. 돈대마다 100여명의 군사들이 상주했다니 현대의 군 초소보다는 부지도 넓다. 염하 주변 돈대는 광성보에서 덕진진을 거쳐 초지진까지 이어진다. 초지진과 덕진진 모두 하루 사이에 미군에 점령당한 곳이다.
●넉넉한 갯벌 드넓은 들판, 남서해안 돈대
강화도 남쪽지역으로는 분오리-미루지-북일곶돈대로 이어진다. 해안 모퉁이 언덕에 자리잡은 분오리돈대부터는 드넓은 강화갯벌이 펼쳐진다. 오른편 동막해변은 좁은 모래사장이 끝나는 곳부터 곧장 진흙갯벌이다. 썰물이면 한참이나 바다로 들어가 갯벌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섬의 남서 모퉁이에 해당하는 북일곶돈대는 해안도로에서 제법 떨어져 있다. 저어새 서식처이자 해넘이로 유명한 장화마을 해변에서 약 1.5km 산길을 걸어야 한다. 강화나들길 7코스에 해당한다. 시작지점의 가파른 계단만 오르면 바닷가 산길이 이어진다. 산 바람과 바닷바람을 번갈아 맞으며 두세 차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걷는 재미가 있다. 산길이 번거로운 이들은 장화마을 해안도로를 산책하는 것도 좋겠다. 저어새 관찰 시설을 중심으로 약 1km 정도 산책길이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강화도는 간척사업의 역사가 오래여서 섬인데도 해안선이 바르고 평야가 넓다. 고려 고종 11년(1232) 몽골군의 침입으로 수도를 임시로 강화도로 옮긴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메워 농지를 확장해 왔다. 섬 서쪽지역 돈대는 드넓은 들판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았다. 석모도를 마주보는 망월·계룡돈대는 해안도로에서 직선으로 뻗은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만난다. 전망이나 자리잡은 모양새는 계룡돈대가 더 매력적이다. 평야 끝에 오똑 솟아있어 바다 조망도 시원하지만, 삼면이 초록이 짙어가는 논이어서 들판 속 섬처럼 보인다.
안타깝게도 53개 돈대를 모두 볼 수는 없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섬 북측지역 해안은 여전히 군사 주둔지고, 그 지역 돈대는 아직도 국토방위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강화=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