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환 감독 1948년作 '해연'
고베영화자료관 "고물상서 발굴"
영상자료원이 필름 복사 들여와
당시 서울 풍경·생활상 담겨
장광헌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장은 지난해 9월 일본 고베영화자료관을 찾아 야스이 요시오 관장과 면담하다 한국 극영화 필름을 보관하고 있다는 제보를 들었다. ‘海燕’(해연)이라고 적힌 캔 속에는 35㎜ 필름 9개 롤이 들어있었다. 유실된 것으로 여겨졌던 이규환(1904~1982) 감독의 1948년작 ‘해연’이 67년 만에 햇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이 감독은 해방 전후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었으나 그가 연출한 작품 20편 중 은퇴 기념으로 만든 ‘남사당’(1974)만 필름으로 남아있다. ‘해연’의 발굴로 이 감독의 진모를 알 수 있게 됐고 지워졌던 해방공간의 한국영화사 한 페이지가 되살아났다. 1940년대 만들어진 한국영화 89편 중 필름으로 보존된 작품은 ‘해연’ 발굴 이전까지 16편에 불과했다.
원로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북한 출신으로 나운규 감독이 있다면 이규환 감독이 남한 출신을 대표한다”며 “우리가 몰라서는 안 될 감독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해연’은 7일 오전 서울 월드컵북로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회를 통해 공개됐다.
‘해연’은 1948년 10월 검열을 통과해 11월 21일 개봉한 작품이다. 미군정 체제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당대의 서울 풍경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계모의 구박을 피해 언니가 일하는 소년감화원에 찾아온 정숙과 역시 계모 등쌀에 가출했다가 소매치기가 된 소년 수길의, 남매와도 같은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은 1950~60년대 충무로를 대표했던 여배우 조미령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김종원씨는 “훗날 북한 인민배우가 되는 문예봉을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배출했던 이규환 감독의 배우 보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연’이 왜 일본에서 발견됐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 제작 당시는 일본과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고, 공식적인 문화 교류도 없었다. ‘해연’이 일본으로 수출된 기록도 없다. 고베영화자료관은 “3년 전 한 고물상에게서 발굴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장광헌 수집부장은 “당시 국내에는 영화 제작 장비가 거의 없어 미군 부대 시설을 주로 이용했다”며 “필름이 미군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해연’의 필름을 일본에서 국내로 반입하는데 든 비용은 4,500만원이다. 소장자인 고베영화자료관에 판권료를 별도 지급하지 않고 필름 복사 실비만 들었다. ‘해연’은 그나마 비용이 적게 든 경우에 해당한다. ‘청춘의 십자로’(1934)가 2008년 발굴됐을 때 영상자료원은 소장자에게 개원 이래 최고액의 보상비를 지급했다. 소장자는 종로3가의 유명 극장인 단성사 운영자의 아들로 ‘청춘의 십자로’ 필름을 50년 가량 아파트 베란다 등에 보관해왔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6ㆍ25전쟁 피란 중에도 버리지 않은 선견지명이 뒤늦게 금전적으로 보상받은 셈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