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전·현직 41명 적발
“이게 도대체 몇 명이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 6명은 지난 2월 6일 세무로비 의혹을 받고 있던 신모(42) 세무사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다 A4 용지 꾸러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꾸러미에 있던 출력물 일부에는 1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전ㆍ현직 국세청 직원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경찰이 5개월 간 수사한 결과 실제로 이중 41명이 신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무공무원 비리가 이렇게 대규모로 적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신씨는 국세청 재직 경험 없이 2002년 세무사시험에 합격한 뒤 곧바로 세무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금세 자리를 잡았다. 자영업자, 제조업체, 부동산투자업체, 외국회사 등이 세무조사를 대비해 달라면서 신씨를 찾아왔다. 신씨의 ‘명성’은 세무공무원과 친분을 쌓고 장기간에 걸쳐 금품과 향응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결과였다. 경찰 관계자는 “심지어 자신을 세무대학 출신이라고 속이고 국세청 직원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고 했다.
조사 결과 신씨는 2008년부터 올 2월까지 총 1억4,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41명의 전ㆍ현직 국세청 직원에게 건네고, 의뢰인의 세무조사 범위를 축소해주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게 해줬다. 강남 한 병원의 경우 매출 누락 수법으로 30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세무조사 당시 신씨가 서울국세청 소속 직원에게 2,500만원의 뇌물을 건네면서 무마됐다. 신씨로부터 청탁을 받은 국세청 직원 중에는 200만원이 넘는 수제양복 세 벌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또 세무조사 시작 때 착수금을 받은 후 마무리가 된 뒤 잔금을 받는 등 다양한 형태로 뇌물이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신씨로부터 금품 등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이모(58) 전 서울국세청 사무관을 비롯해 국세청 전ㆍ현직 직원 10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뇌물수수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31명에 대해서는 국세청에 징계를 통보했다고 7일 밝혔다. 신씨는 앞서 지난 2월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았다.
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