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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의 다다이스트 '고따따' 베일 벗다

입력
2015.07.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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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개벽'에 다다이슴 발표후

2년뒤 자취 감춘 고한용의 생애와

1920년대 韓日 다다 자취

日 한국문학연구자가 되살려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고한용(사진 왼쪽, 1903~1983). 20대 청년 시절. 고한용 유족 제공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고한용(사진 왼쪽, 1903~1983). 20대 청년 시절. 고한용 유족 제공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전쟁을 피해 스위스 취리히로 온 독일 시인 후고 발이 차린 카바레 볼테르는 ‘다다’라는 예술운동이 태어난 곳이다. 대규모 살육과 파괴로 이어진 근대 문명에 반기를 든 젊은 예술가들이 온갖 희한한 짓거리로 스캔들을 일으키던 소굴이다. 다다이스트들은 기존 질서를 조롱하며 반(反)예술의 난장판을 벌였다. 부르주아들은 격분했지만 예술가들은 열광했다. 다다는 베를린, 바르셀로나 등을 거쳐 뉴욕으로 전파됐고, 전쟁이 끝나자 파리를 점령했다. 오래 가진 못했다. 다다의 난동에 진력이 난 앙드레 브르통 등 일군의 시인, 화가들이 1923년 경 초현실주의로 전향하면서 끝났다. 다다는 열병이었다. 지속 기간은 짧았지만 1920년대 예술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 시절 식민지 조선에도 다다이스트가 있었다.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고한용(1903~1983)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다다를 접한 그가 1924년 잡지 ‘개벽’에 ‘다다이슴’을 발표하면서 등장했다. 그러나 2년 뒤 문단에서 자취를 감춰 잊혀진 인물이 됐다. 고따따(고한용의 필명)의 다다는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몇 편 안 되는 글로 남았다.

그런 고한용을 일본의 한국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가 불러냈다. 신간 ‘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이마 발행)에서 고한용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다다의 궤적을 그려냈다. 지난해 낸 일본판을 한글로 다시 써서 출간했다.

저자는 고한용의 생애사 동선을 따라 개성, 경성, 동경, 미야자키, 그리고 전후의 서울로 ‘다다적 산책’을 이끈다. ‘다다이스트 고한용과 친구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일본 다다를 대표하는 다카하시 신키치와 쓰지 준, 아나키스트 시인 아키야마 기요시, ‘팜므 파탈’ 기쿠무라 유키코 등 고한용과 교류했던 사람들과 일본 다다에 영향을 받았던 조선의 문학 청년들이 줄줄이 나와 당대 조선과 일본 문학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고한용이 참여한 일종의 코뮌, 여러 예술가들의 얽히고설킨 연애사, 아나키스트ㆍ다다이스트와의 교류 등이 흥미롭다.

식민지와 종주국이라는 비대칭적 관계가 엄연한데도 고한용과 일본 친구들은 국제적 연대를 과시했다. 국가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개인의 자아를 앞세운 다다의 방자함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고한용은 쓰지 준과 다카하시 신키치를 경성으로 초대해 조선 문인들에게 소개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정지용, 박팔양, 오장환, 임화, 이상 등 당대 주요 시인들이, 나중에는 부인했지만 다다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교류는 1924년 고한용이 미야자키로 떠나면서 끊겼다. 고한용이 다시 경성으로 돌아온 1926년 경 일본의 다다는 활기를 잃었고, 조선의 다다 역시 거의 끝났다. 쓰지 준은 추운 아파트에서 굶주리다가 광기와 방랑, 가난으로 점철된 생을 마쳤다. 다다이스트다운 파멸이었다. 신키치는 선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시인 임화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노선을 전환하는 등 조선 청년들은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마주했다. 그러나 미치지도 죽지도 못하고 마르크시즘에서 희망을 찾지도 못한 고한용은 붓을 꺾고 사업가로 변신해 보통 사람으로 살다 갔다.

이 책이 전하는 1920년대 조선과 일본의 다다 풍경은 지금 눈에는 고색창연하게 비친다. 한때 그렇게 희한하게 세상을 건너간 청춘들이 있었다는 게 이채롭다. 겨우 2년, 한순간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라져 버린 다다의 자취가 아련하기만 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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