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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쿡방 대첩'에 새삼 떠올린 우리네 팔자

입력
2015.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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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냉장고를 부탁해(JTBC)

화요일: 집밥 백선생(tvN)

수요일: 수요미식회(tvN)

목요일: 한식대첩(올리브TV)

금요일: 삼시세끼(tvN)

토요일: 마이리틀텔레비전(MBC)

일주일이 숨가쁘다. 하루라도 ‘먹는 얘기’가 안 나오는 날이 없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거의 매주 저 프로그램들을 챙겨보고 있다.

여러 학자들, 혹은 문화평론가들도 요즘 방송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먹방’과 ‘쿡방’의 전성시대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해주고 있다. ‘수요미식회’ 고정패널이기도 한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 '악식' 황선생 "미식은 다 거짓말이야")에서 요즘의 쿡방 열풍에 대해 ‘푸드 포르노’라는 말을 했다. 먹고 요리하는 걸 보면서 시각적인 대리만족을 한다는 거다.

진중권 교수는 한국에서 ‘먹다’는 말이 가진 의미가 남다르다는 걸 강조했다고 한다. 인사할 때 “밥 먹었냐”고 묻고, ‘나이 먹다’ ‘욕 먹다’ 처럼 웬만한 걸 모두 ‘먹는다’고 표현하는 한국말 안에는 오랜 기간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굶주리며 살아왔던 우리의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인들에게 먹는 방송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식을 부르주아의 취미로 여기는 식도락가를 비꼬며 악식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식을 부르주아의 취미로 여기는 식도락가를 비꼬며 악식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아줌마가 되고 나선 방송 보면서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든다. ‘저 사람들, 실제 집에서도 가족들 먹이기 위해 매일 밥 차리는 노동을 할까’ 하는 의문이다. 요즘 인기 상한가인 최현석 셰프 인터뷰를 보니 “집에선 요리를 전혀 안 한다”고 하더라. 실제 프로 셰프 중엔 이런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하긴, 돈벌이로 하는 일은 제발 쉴 땐 안 했으면 좋겠다는 지긋지긋함이 충분히 이해 된다.

‘수요미식회’를 볼 때 특히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막상 그 프로그램에 나와서 음식에 대해 말하는 이들 중 실제로 집에서 식구들 먹이려고 매일 요리 만들고 밥상 차리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정작 음식 만들고, 설거지 하고, 재료 다듬는 등등의 노동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에 대해 저토록 진지하고 심오하게 말을 하는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 말이다.

아줌마들에게 물어보시라. 세상에서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느냐고. 백이면 백 다들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남이 해주는 음식.”

내가 ‘쿡방’을 보면서 떠올리는 건 어릴 때 외할머니가, 엄마가 해주시던 맛난 음식을 먹던 기억이다. 평안도 출신의 외할머니가 마술처럼 뚝딱뚝딱 만들어주시던 냉면 육수, 만둣국, 고추장아찌, 가지김치 같은 음식이 떠오르면서 TV에서 나오는 음식과 오버랩 된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좀 특별한 ‘쿡방’은 ‘한식대첩’이다.

'한식대첩3' 녹화장면. 올리브TV 홈페이지.
'한식대첩3' 녹화장면. 올리브TV 홈페이지.

일단 ‘한식대첩’에 나오는 대다수의 아주머니 참가자들은 ‘매일 식구들 밥 차려주는 가사노동자’의 냄새가 물씬 난다. 출연자 대부분이 직접 음식점을 경영하는 ‘오너 셰프’지만, 이분들은 매일 일터와 집에서 모두 고단한 밥 차리기 노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든다. 특히 종가집 종부나 종녀 출연자들을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저렇게 손이 많이 가는 제사 음식을 매번 만드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끄럽지만, 나는 엄마나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것처럼 품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를 하지 못한다. ‘귀찮고 게을러서 안 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돈도 벌어야 하고, 음식도 만들어야 하는데 언제 할머니가 했던 만큼 다 하느냐는 항변도 나 혼자서 자주 한다.

고기와 두부로 만두소를 만들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를 200개쯤 빚어놓는 일은 엄두조차 안 난다.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고깃국물 내고 식히면서 기름 걷어내야 하는 냉면육수도 귀찮다.

우리 애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햄이고, 외식도 자주 한다. 노동집약적인 ‘고급 음식’이 먹고 싶을 땐 엄마한테 전화한다. 그런데 그 짓을 매일 할 수는 없으니 TV에서 보는 것이다. 입맛을 다시면서. 백종원씨가 ‘마리텔’에서 짜장 만들다가 살짝 태워먹고 “아유, 그러니까 이런 걸 왜 집에서 해. 사 먹어유 그냥.” 이렇게 말하면 까르르 웃으면서 자지러진다. “맞아, 맞아”이러고 물개 박수를 치면서.

‘쿡방’이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매우 복합적이다. ‘좋은 음식’의 본질은 결국 좋은 재료와 정성이라는 것. 그런데 그 정성은 만드는 사람이 들이는 시간과 노동력이 그 본질이라는 것.

그런데 지금 현실적으로 ‘엄마가(혹은 아빠가)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이다. 아빠, 혹은 엄마, 혹은 조부모가 돈이 많아야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시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게 되니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30~40대 부부들은 맞벌이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남자건 여자건 아침 일찍 출근전쟁을 겪으며 출근하고, 해가 진 뒤에 녹초가 돼서 퇴근한다. 주말엔 애랑 놀아주기도 벅차다. 그런데 어떻게 음식 만드는데 품을 들이나.

가끔은 ‘한식대첩’을 보다 보면, 화면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와서 나에게 잔소리를 하실 것 같기도 하다. “거, 조금만 귀찮고 힘든 거 참으면 니 새끼 맛난 거 먹이는데 그게 그리 어렵냐? 쯧쯧쯧”하시면서.

외할머니가 힘들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음식에 대한 노동을 우리 세대는 너무 가볍고 귀찮게 여기고 있다는 죄책감도 든다. 하지만 체력과 정성은 둘째 치고 물리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적은 건 어떻게 하나.

전국민이 못 살았던 시절엔 힘든 와중에도 정성 들여 밥을 해 먹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으로 막 먹게 되는 것일까. 제대로 밥 해 먹을 에너지조차 마지막 한 방울까지 돈 버는데 빼앗기는 게 과연 정상적인 삶일까. 현실에선, 집에서 쉬는 그 짧은 시간엔 주방에서 칼을 잡는 대신 누워서 쿡방을 보는 것이다. 멍하니.

'한식대첩3'의 심사위원. 왼쪽부터 백종원, 심영순, 최현석. 올리브TV 홈페이지.
'한식대첩3'의 심사위원. 왼쪽부터 백종원, 심영순, 최현석. 올리브TV 홈페이지.

한식대첩3

매주 목요일 저녁 9시40분 올리브TV

지역의 자존심을 걸고 오직 한식으로 승부한다!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 제주, 이북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한식 고수들의 로컬푸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한식대첩’엔 시즌별 징크스가 있다. 현재 방송 중인 3편에서는 1, 2회 우승팀인 강원과 전남이 조기탈락하는 징크스가 생겼다. 그러나 3회 우승팀 북한과 4회 우승팀 서울은 아직 건재하다. 시즌2엔 식재료를 심사위원이나 진행자가 먼저 맛 보면 그 팀은 끝장전에 가는 징크스가 있었다.

2) ‘한식대첩’의 진짜 재미는 지역별로 뚜렷한 스타일이다. 음식 스타일 외에도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내는 욕설(?)에 가까운 말싸움도 재미있다. 시즌1에서 전남팀이 깍쟁이 캐릭터의 서울팀을 ‘디스’했던 게 대표적이다. 배우 김윤석은 최근 인터뷰에서 “요새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한식대첩3'다. 거기에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어찌나 유쾌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3) 시즌1의 우승팀은 전남, 시즌2 우승팀은 충남이었다. 시즌1과 2 모두 서울은 3위를 했다. 제주는 매 시즌 ‘고수’가 출연했는데도 늘 7위 이하 하위권이었다는 징크스가 있다.

방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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