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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문예지, 문단 바깥을 상상하다

입력
2015.07.0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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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문예 서평지 '악스트', 순수한 소설 리뷰

창간호 장식 소설가 천명관 "작가가 문단 주인 돼야"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범죄물은 양서가 아니라는 편견 깨겠다"

“한국문학이란 한국어로 쓰여졌고 쓰여지고 쓰여질 온갖 종류의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을 읽는 독서 행위, 읽기와 쓰기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생태계입니다. 물론 이 유기적인 생태계를 폐쇄적 조직으로 만드는 제도적 장치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대형 출판사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문학잡지입니다.”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에 부쳐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마련한 긴급 토론회에서 심보선 시인이 꺼낸 말은, 우리 문단이 걸어온 수십 년 역사를 시계침 돌리듯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한국 문학은 한국어로 쓰인 글’이라는 당연한 말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는가. 그러나 문단이라는 굳건한 현존 시스템의 바깥으로 나가는 자들에겐 허허벌판 위에 집을 지어야 하는 생고생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문학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이야기하는 일이 문단 바깥에서 가능할까? 최근 창간된 문예지 ‘악스트’와 ‘미스테리아’는 이 무거운 질문에 대한 밝은 답변이다.

“비평이 아니라 서평이 실립니다. 소설에 대한 해설과 분석을 비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거죠. 문예지에 흔히 들어가는 시론도 없어요.”

은행나무에서 창간한 ‘악스트’는 소설과 소설평이 중심이 된 격월간 문예서평지다. 편집장 백다흠씨는 “비평은 평론이지만 서평은 에세이”라고 강조했다. 전자가 지식인들의 토론이라면 후자는 소설 마니아들의 수다에 가깝다. 시론을 버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문인이 시대정신을 주창했던 70~80년대의 전통을 따라 시론은 문예지의 핵심 콘텐츠였다.

시대, 사상, 담론 같은 무거운 단어들을 벗어버리고 악스트가 추구하는 것은 순수한 소설 리뷰다. 편집위원으로 위촉된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의 세 소설가가 잡지에 실릴 소설을 정하고 소설평 써줄 사람을 택한다. 선정하는 소설의 70%는 구간, 소설평 쓰는 사람은 소설가, 서평가, 시인 등이다. 기존 문예지가 홍보를 위해 자사의 신간만 다루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다.

“앞으론 문학과 관련 없는 저자들을 더 늘릴 계획이에요. 판사, 편집자, 독자, 기자, 논객 중 소설에 관심이 있고 필력이 좋으면 누구나 서평을 쓸 수 있어요.”

‘비전문’을 표방함으로써 악스트는 ‘전문가에 의해 검증된 문학’이라는 기존 시스템과 명확히 선을 그었다. 다만 이것이 특정 소설에 대한 옹호나 부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중문학과 순문학을 구분해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소설을 선호한다고 선언할 생각은 없어요. 편집위원들의 의견도 전부 다르고요. 다만 잡지에 실리는 인터뷰나 서평의 내용이 악스트가 지향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고 뜻이 맞는다고 판단한 작가들이 알아서 모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창간호 인터뷰를 장식한 이는 소설가 천명관씨다. 그는 여기서 문단권력을 “문단 마피아”로 지칭하며 “지식인에 의해 예술이 점령 당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단의 원로인 이른바 ‘선생님’들이 작가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며, 문학상 상금이 아니면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작가들이 그에 납작 엎드리는 바람에 독자와 소설이 멀어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독자들은 재밌는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보라, 영화판은 대학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단도 당연히 작가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등단제도니 청탁제도니 문학상이니 다 때려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미스테리아’는 문학동네의 장르소설 임프린트 엘릭시르에서 창간한 격월간 미스터리 전문지다. 장르소설에 대한 천시는 한국 문학의 위기 때마다 거론돼온 문제점이다. 소설의 예술성과 사상의 깊이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 속에서 소설을 보고 낄낄댄다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자연스레 장르소설 위축으로 이어졌다. 김용언 편집장은 “이야기의 힘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 소설이 독자들을 다시 한국 문학으로 돌아오게 할 거라 확신했다. 장르소설 잡지와 프레시안 서평팀장을 거쳐 지난해 문학동네에 합류한 김씨는 “미스터리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잡지를 기획했다.

창간호에는 배명훈, 도진기, 송시우의 단편소설 외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등장한 법의학자 유성호씨의 사건ㆍ사고 기록, 밀실 살인의 가능성에 대한 작가들의 심도 깊은 대담, 독자들의 독서 에세이와 서평이 실렸다.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으나 기존 문예지나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았던 ‘허즈번드 시크릿’ ‘그림자 밟기’ 의 서평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볼 수 있다. 필자들은 비평가가 아닌 에세이스트, 번역가, 인터넷 서점 MD들이다.

미스터리 전문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김용언씨. 그는 "범죄를 다루는 소설은 좋은 책이 아니라는 편견을 깨트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미스터리 전문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김용언씨. 그는 "범죄를 다루는 소설은 좋은 책이 아니라는 편견을 깨트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국내에선 범죄를 다루고 사람이 죽고 죽이는 책을 양서(良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편견을 깨고 싶어요. 좋은 작품을 자주 접하다 보면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추리소설이 인기장르로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씨가 말하는 편견은 독자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스테리아’ 창간호에 대한 반응은 이미 열광적이다. 보름 만에 4,000부가 팔렸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주간 소설부문 1위, 종합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문단이 아닌 독자를 향한 글쓰기가 다시 한국 문학의 희망이 될 것인가.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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