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 채권단이 구제금융 연장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개혁안에 찬ㆍ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5일(현지시간) 실시했다. 현지 언론들의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0.5~1%차로, 오차범위 내 초박빙이어서 개표가 종료될 때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리스 유권자 985만5,000 여명은 이날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6월25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서 제안한 협상안을 수용하느냐”는 안건에 대해 찬반을 선택했다.
그리스 현지 언론사들의 마지막 발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44%와 43%, 43%와 42.5%, 혹은 43.4%와 44.8% 등으로 조사기관 마다 찬반이 엇갈리고 격차도 1%포인트 안팎의 미세한 차이를 보였다.
최근 IMF에서 ‘원금 30%를 탕감하고 부채 만기를 현 2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공개돼 막판 변수로 떠올랐지만, 실업률이 50%에 육박한 상황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반대 여론이 높다. 정치ㆍ경제 현안에 대한 그리스 국민투표는 1974년 입헌군주제 폐지를 결정할 때 치른 이후 41년 만이다.
투표 결과 찬성 여론이 높을 경우,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조기 총선을 치르거나 과도내각을 구성해 ‘3차 구제금융’ 협상을 벌여 추가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 ‘반대’일 경우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와 함께 그리스의 채무이행 불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EU는 물론 세계경제에 또 한번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치프라스 총리는 투표에 앞서 “총투표에서 이 협상안에 반대해 달라”며 “반대 결정은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 더 좋은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채권단은 “그리스 투표 결과는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면서도 “반대로 결과가 나올 경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수도 있다”며 찬성표를 압박했다. 그리스 국민은 찬성해 힘겨운 긴축상황을 앞으로 더 감내하느냐, 아니면 반대해 국가부도를 맞이하느냐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한편, 투표를 앞두고 채무국 그리스와 최대 최권국인 독일간 장외 공방전도 뜨거웠다. 그리스 거리 곳곳에는 “지난 세월 독일은 우리의 피를 빨아 왔다. 이제는 독일에게 ‘아니다’라고 말할 때다”라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반면, 독일 언론들은 그리스와 국제채권단간 협상 결렬의 책임이 전적으로 그리스에 있다며 치프라스 총리를 ‘도박꾼’ ‘비겁자’ 등으로 부르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양국간 긴장감이 불만과 적개심의 형태로 각각 표출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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