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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배급' 새벽부터 긴줄… 은행 잔고는 바닥권

입력
2015.07.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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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은행 잔고 10억유로 추산, 불안감 커지며 현금 가치 '금값'

도매상은 해외거래 돈길 막히고 소매상은 현금 고객 뚝 끊겨

참치ㆍ파스타 등 식료품 사재기, 슈퍼마켓은 반짝 호황 맞아

그리스 북부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에서 2일 한 노인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입을 만한 옷을 찾고 있다. 하루 60유로로 예금 인출을 제한한 이후 그리스 서민 경제는 파탄 상태에 놓였다. 테살로니키=AP 연합뉴스
그리스 북부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에서 2일 한 노인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입을 만한 옷을 찾고 있다. 하루 60유로로 예금 인출을 제한한 이후 그리스 서민 경제는 파탄 상태에 놓였다. 테살로니키=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시작된 그리스 정부의 자본 통제로 그리스 경제가 급격히 마비되고 있다.

지난 29일 그리스 은행들이 영업을 중단한 뒤 그리스 시민들은 하루 최대 60유로(약 7만4,000원)까지만 현금인출기(ATM)에서 인출할 수 있다. 매일 그리스 전역의 ATM기 앞에는 새벽부터 그날 치 현금을 인출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안젤리키 안드레이키(83)는 “이 나이에 현금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게 될 줄 몰랐다”며 “치프라스가 이 나라를 북한으로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전했다.

연금수급자에 대한 연금 지급이 지난 1일 일부 은행에서 재개되자 온 가족이 연금으로 생활하기도 한다. 2일 월 정기 연금 600유로를 모두 인출했다는 한 연금수급자(80)는 그의 딸과 사위가 월급을 인출하지 못해 자신의 연금으로 온 가족이 버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가 뱅크런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자본 통제 처방을 했지만 그리스 은행에서는 자금이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다. WSJ는 그리스 은행 관계자를 인용해 그리스 은행 시스템에는 약 10억 유로가 현금으로 남아있다고 추측했다.

그리스의 현금 경색은 소매상들에게 직격탄이었다. 특히 부패하기 쉬운 상품을 수입하는 소매상의 타격이 컸다. 관광객이 북적대는 아테네 중심가 플라카에서 샴페인, 러시아산 게 다리 등 미식가를 위한 고급 마켓을 운영하는 크리스토스 조지오포울로스는 “은행 영업 중단 후 이틀간 고객이 하나도 없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남은 게 다리를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가게 문을 닫고는 “직원들에게 언제 밀린 월급을 줄 수 있을지, 가게를 언제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야채와 계란을 파는 안나 디아만티디(50)는 “다음주에도 은행문이 닫혀 있다면 식재료들이 썩기 전에 거저 나눠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 공급업체들에게 물품 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도매상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식품 도매 사업을 하며 제품 65%를 수입하는 콘스탄틴 미칼로스 아테네 상공회의소 회장은 “해외로 자금이체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비즈니스 활동에 관한 한 지금까지 최악의 악몽이 실현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남은 재고는 20일치뿐이다.

그리스 각 도시를 운항하는 항공사 라이언에어홀딩스는 지난달 30일 비행기삯을 공항에서 현금으로 결제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자본 통제로 해외 전자 결제가 금지되자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라이언에어에 그리스 고객들이 비행기삯을 직불카드로 지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감에 식료품을 사재기하는 손님들로 슈퍼마켓은 반짝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아테네의 한 슈퍼마켓에서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마리아나는 지난 2일 파스타와 쌀, 콩류와 같은 주요 식품이 평소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녀는 “패닉에 빠진 사재기라고 부를만한 현상은 없었지만, 노인 고객들은 확실히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건조 식품과 참치나 정어리 등 캔 식품들을 더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리스 정부의 자본 통제는 그리스 내부 거래는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은 대부분 평소대로 지급되고 있다. 그러나 불안한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현금이 평소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됐다. 아예 현금뭉치로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도 있다. 비엔나에서 디지털 설계 및 시장조사 회사를 운영하는 엘리 트조르트지는 이번 주말 직원들의 급여를 지불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할 예정이다. 그녀는 “내가 월급을 주기 위해 현금 뭉치를 들고 여행한 것은 10년 전 코소보가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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