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하듯 수십 마리 기르며 방치
질병ㆍ굶주림의 고통 주는 학대로
주인들은 "포기 못한다" 구조 거부
상해와 달리 학대 인식 약해 문제
3일 충남 태안군의 한 임야 공터. A(70)씨가 거주하는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동물들의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나무 울타리와 그물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3㎡ 크기의 우리 여섯 곳에는 개 70여마리, 고양이 30여마리에다 거위ㆍ오리 30여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8년 전 공터에 자리를 잡은 A씨가 한두 마리씩 거둬들인 동물들이 번식을 하면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는 병원치료까지 받고 있어 동물을 제대로 기를 형편이 아니었다. 실제로 동물들은 썩은 물을 마시고 병에 걸리거나 사료를 먹지 못해 아사 직전이었다. 제보를 받은 군청 관계자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A씨는 “사랑하는 동물들을 포기할 수 없다”며 구조를 거부했다.
지난달 중순에도 서울 홍은동에서 한 노부부가 33㎡ 가량의 반지하 방에 시츄 42마리를 방치해 이웃이 신고하는 일이 일어났다. 부부는 10년 전부터 “개들을 자식처럼 길렀다”고 항변했으나 불어난 수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관리를 포기했다. 동물구호단체가 구조하기 전까지 강아지들은 모낭충 감염으로 피부가 괴사하는 등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두 사례는 전형적인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ㆍ과잉다두사육)’에 해당한다. 애니멀 호딩은 개인이 능력이나 여건이 되지 않는데도 동물을 수집하듯 과다하게 기르면서 결국은 방치하게 되는 일종의 학대 행위를 말한다. 정신질환인 저장강박(Hoarding)이 동물로 이어진 것이다.
동물구호단체들에 따르면 애니멀 호딩은 동물학대의 새로운 유형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5년여 전 유기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버려진 동물을 구하자’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개체 수가 늘고 관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자 선한 의도는 역설적으로 동물에 고통을 주는 학대 행위로 둔갑했다. 악취와 소음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질병을 유발하는 등 다른 문제도 야기했다.
문제는 이런 신종 동물학대를 제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학대방지는 물론 긴급구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도구 및 약물을 사용하거나 도박ㆍ유흥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직접적 행위만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더라도 주인이 거부하면 동물을 데려 올 수 없어 방치에 의한 학대를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한 미국, 영국 등 해외의 경우 애니멀 호딩이 일찍이 사회 문제로 부각된 탓에 동물 방치를 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개인이 반려동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규모를 15마리 이하로 제한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애니멀 호딩을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놓고 찬반 갈등 조짐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은 지난해 12월 동물학대 범주에 애니멀 호딩을 포함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일정 공간에서 다수의 가축을 기르는 축산 농가들은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해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윤 의원은 “소관 소위원회에 법안이 상정되면 농업용 가축 사육에 피해가 없도록 논의하고 공청회도 열어 취지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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