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이란 숫자가 아주 강렬하고 행복하게 나의 가슴에 꽂혔던 한 주였다. 지난달 27일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의 실질적인 고향, 제주에 3박 4일 동안 다녀왔다. 사실 나는 부산 출생이다. 부산 토박이 아버지와 1.4 후퇴 때 평양에서 부산으로 피난 오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후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께서 직장 때문에 제주로 들어가셨다가 우리 가족을 불러들였고, 난 여섯 살 때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내 유년시절부터의 추억과 기억은 온전히 제주의 것이기에 나는 태어난 곳이 아닌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말한다.
이번 제주여행은 좀 특별했다 처음에 얘기했듯 “30”이란 숫자 때문이다. 바로 고등학교 졸업 30주년을 기념하는 사은회 겸 동창회였기 때문이다. ㅎㅎ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뼛속 깊이 느꼈다. 하지만 동창회가 열렸던 장소에서만큼은 그 동안의 세월이 멈췄다.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고교 때로 돌아갔던 것이다. 비록 이젠 누가 선생님이고 학생인지 모를 정도의 외모로 변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같이 모여(200여명이나 모였다) 이야기하고 떠들고 사진 찍고 노래하고 선생님들도 마치 동창인 양 신나게 먹고 마시고 자~알~ 놀았다.
요란한 동창회를 하고 난 뒤, 으레 제주에서의 해장의식을 치르기 위해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 했다. 내가 제주에서 해장을 위해 택하는 메뉴로는 ‘삼보식당의 옥돔 뭇국’ ‘삼대국수집의 고기국수’ ’우진이네 고사리 육개장’ 그리고 ‘도라지나 장춘식당의 물회’가 있는데, 언제나 큰 고민 거리다.
이번에도 고민을 하다가 최근 방송에서 봤던 고사리 육개장을 먹자고 결론을 내려 우진이네로 향했다. 어라~~~ 메르스 때문에 관광객이 없다라고 들었는데 그 집 앞에는 오전 11시인데도 줄을 엄청 선 것이 아닌가! ‘방송의 힘이 메르스를 이겼네’라며 우리 일행은 차선책을 생각했고 그 중 한 친구가 요즘 많이 뜨고 있는 물횟집으로 가자고 해서 도두동에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제주의 물회는 육지(제주에선 제주 이외의 본토를 다 육지라 한다) 물회와는 베이스가 다르다. 제주물회는 된장이 베이스 육수재료가 된다. 워낙 콩 문화가 발달되어 그런지 고추장 보다는 된장을 주로 쓴다. 밭에서 일하다가 새참을 먹을 때도 냉수에 된장을 그냥 휙~~풀어 오이 좀 썰어 넣은 된장 오이 냉국을 먹을 정도니까. 이 된장육수에 식초 등등 최소한의 양념을 넣고 자리돔이나 홍해삼, 한치 등을 넣어서 밥과 함께 먹는 것이 제주 스타일 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육지 물회와 다른 점은 물회의 주재료 중 생선은 오로지 자리돔 뿐, 광어나 농어 등등 다른 생선살을 재료로 쓰지 않는다는 거다. 채소도 여러 가지 없이 부추,풋고추만 넣고, 오이는 ‘있으면 넣고 없음 말고’ 정도다.
그런데 ‘요즘 제주 물회, 조금은 육지화 되어가고 있지 않나?’ 라는 조심스런 걱정을 좀 해본다. 음식도 문화이기에 발전되어 가는 건 대찬성이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없는 발전은 흉내에 불과한 게 아닌지...
어찌 보면 거칠고 투박하고 무뚝뚝하지만, 구수하고 속 깊고 담백한 제주사람들을 속 빼 닮은 제주 물회. 고교졸업 30년이 흘러 만났지만 아직도 고등학생 같은 한결 같고 변함없는 내 친구들처럼 언제 먹어도 변치 않는 제주물회로 남아주길 바란다.
배우 겸 요리사
물회
주재료: 한치, 자리돔(구할 수 있으면), 홍해삼, 전복 등등 자기가 좋아하는 해산물, 부추30g,풋고추2개, 오이1/2개, 다시마 손바닥 크기 한 장, 물4컵
양념: 된장 2큰술, 고추장 1큰술, 다진마늘 1작은술, 식초 2큰술, 설탕 1작은술, 깨 소금 약간
조리법
1. 분량의 물에 다시마를 1시간 담가 다시마물을 만든다.
2. 양념을 잘 섞어 주재료에 버무려 놓는다.
3. 부추와 풋고추는 잘게 송송 썰고 오이는 채썬다.
4. 1의 다시마물에 2의 버무린 주재료를 넣고 채소 올려 간을 본 뒤 취향에 맞게 간을 조정해서 얼음을 넣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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