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택 IMO사무총장 당선은 치밀한 전략의 승리
김무성-유기준 '내 덕 다툼'에 성과는 되레 가려져
지난 달 30일 국제 해양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유엔 산하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임기택(58)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선출됐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현직 유엔기구 수장으로는 두 번째, 유엔 산하기구 수장으로는 유일한 한국인이 됐는데요. 더구나 세계 조선ㆍ해운안전 및 해양환경보호, 해운물류 등과 관련한 규범을 만드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조직을 이끌게 된 만큼 개인적인 경사는 물론 국가적인 쾌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레이스를 마친 지금은 마음 편히 웃고 있지만 임 사장은 사실 지난 3월말 후보 등록을 할 때만 해도 덴마크 키프로스 필리핀 러시아 케냐 등 다른 5명의 후보에 비해 승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작년 9월 일본인인 현 IMO 사무총장이 연임 포기를 선언하자 덴마크와 키프로스 후보가 곧 바로 선거운동에 돌입했고 막차를 탄 그에겐 불과 3개월 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신 역시 덴마크와 키프로스 후보의 ‘2강 구도’로 예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습니다. 임 사장이 5차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드레아스 노르드세스 덴마크 해사청장을 누른 겁니다.
소식이 전해진 직후 승리는 주영국 IMO 연락관(1998~2001년), 주영국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2006~2009년) 등을 지내며 IMO와 꾸준히 인연을 맺은 임 사장의 이력에 정부의 전폭적인 외교적 뒷받침이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왔는데요. 내부에선 이보다 치밀한 전략의 승리가 관건이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해수부는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투표하고 매번 최저점자를 탈락시키는 선거방식을 어떻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심했다고 합니다. 투표권을 가진 총 40개의 이사국 중 유럽을 중심으로 10개국의 절대지지를 받는 덴마크 후보가 부동의 1위지만 나머지 국가들, 즉 아프리카 미주 아시아 이사국의 표를 회를 거듭하면서 흡수한다면 가능성이 낮지만은 않다고 본 겁니다. 때문에 각 라운드 별 탈락한 후보를 찍은 국가가 우리를 지원하도록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는데요. 특히 같은 아시아국인 필리핀과 이사국이 10개에 달하지만 후보를 내지 않은 미주에 무게를 뒀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는 “전 이사국이 어느 나라를 찍을지 면밀히 파악해 지지국이 탈락할 경우 우리를 찍어야 할 당위를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다”며 “‘임 사장이 개도국과 선진국의 가교역할을 할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한 게 주효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은 지난 2007년 벌어졌던 ‘2012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전에서 이긴 경험이 밑거름이 됐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모로코의 탕헤르와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등과 경쟁을 벌였는데요. 선거방식이 이번 IMO사무총장 선거처럼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투표하도록 돼 있어 각국 지지표 분석 및 탈락표 흡수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정부는 승리의 방정식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해수부, 외교부 등 정부의 지원도 한 몫 했는데요. 올 3월 취임 전까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유기준 장관이 폭 넓은 인맥을 활용해 각국 외교사절을 만난 일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남미 순방 때 정상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점은 보도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한 명의 공로자가 있는데요. 바로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입니다. 이 전 장관은 올 5월 나이지리아 대통령 취임식에 대통령 특사로 파견돼, 현장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첫 여성 대통령인 엘런 존스 설리프 나이베리아 대통령을 만나 임 사장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해수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장관 방문 이후 나이베리아 대표단은 든든한 우군을 자처했다고 합니다.
치밀한 분석과 발로 뛴 호소는 실제 선거과정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1차 투표에서 임 사장은 10표를 얻어 덴마크 후보(12표)를 근소한 차이로 뒤쫓았는데요. 당시 탈락한 필리핀 후보의 지지표를 가져와 2차에선 14표를 획득해 1위로 올라섭니다. 이후 상승세를 굳힌 우리나라는 5차까지 꾸준히 선두를 달리며 덴마크와의 격차를 벌렸고 결국 5차 투표에선 26표를 따내 덴마크 후보(14표)를 큰 차이로 따돌렸습니다.
이번 성과는 후보자는 물론 각 정부부처, 유관 단체 등 광범위한 주체들의 노력이 조화를 이룬 결과로 봐야 할 겁니다. 때문에 그 공을 누구 하나가 독차지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테고요. 또 앞으로 세계 해양 조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또 한 차례 협업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임 사장 당선 직후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로 ‘내 덕’이라며 설전을 벌이고 있는 유기준 장관과 해수부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해수부의 치밀하고 유용한 전략은 분명 평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논공행상을 두고 이처럼 화재의 중심에 계속 선 상황이 이어진다면 마땅히 칭찬 받아야 할 부분은 점차 빛이 바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인 첫 IMO사무총장 탄생에 해수부가 누구보다 핵심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해수부가 더 이상 스스로 자신의 공을 깎아 내리는 모습을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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