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원 다수 "저금리 부작용 우려"
정부에 구조개혁 주도적 노력 촉구
“현재의 경제 여건 하에서는 추가적 금리인하나 재정확대만으로 경제활력을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금융통화위원회 A위원)
“기준금리가 이미 역사적 최저점에 이른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데에는 상당한 부작용과 위험 수반될 수 있다.”(B 금통위원)
실물경기가 부진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통화정책 당국인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만으론 경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에 구조개혁 노력을 강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성장세 회복 지원을 내세워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포인트(현행 연 1.5%) 끌어내렸던 한은이 이젠 정부의 주도적 대응을 요구하며 후선으로 물러서는 모습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이주열 총재 혼자 선봉에 섰다면 지금은 금통위원들까지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선 모양새다.
1일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현행 수준으로 낮췄던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 다수 위원이 금리 인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피력했다. 전날 공개된 의사록을 보면 C위원 역시 “정책 당국은 단기적 경기 회복을 도모하기 위한 금융 및 재정완화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정책여력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유일하게 동결을 주장한 문우식 위원 역시 “현재와 같은 저금리 하에서는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된다”고 지적했다. 문 위원은 금리 인하의 주요 근거로 제시된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도 “우발적이고 일시적 충격이므로 설사 메르스가 확산되더라도 금리 인하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론을 폈다.
이날 회의에선 금리 인하 찬반 여부를 막론하고 본격적 구조개혁을 촉구하는 발언이 쇄도했다. C위원은 “전례 없는 대내외 경제위기를 근원적으로 이겨내려면 대대적이고 효과적인 구조개혁 뿐”이라고 진단했고, 문 위원은 “일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수단을 소진하기보단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주문했다. D위원 역시 “우리 경제의 저성장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잠재성장률 하락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방향성을 찾아나가야 한다”며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B위원은 구조개혁이 통화정책 효과와 직결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구조개혁 지연으로 성장률 및 소득증가율이 떨어지면 가계부채 부담이 더욱 늘어 금리 인하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금통위원까지 일사불란하게 나선 한은의 구조개혁 요구를 두고 금융권에선 “경기부양의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추가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려는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회의록 공개를 염두에 둔 작심 발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한은 고위관계자)며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불만스러워하는 한은 내부 기류도 감지된다. 금리 인하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한은의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대 중반까지 떨어뜨리는 극약처방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다 보니, 한은으로서는 경기부진 책임론 내지 통화정책 무용론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은은 ‘경제 발전’에 밀렸던 ‘금융안정’ 책무에 방점을 찍는 한편, 시급한 구조개혁 과제를 지목하며 정부에 적극 훈수를 두는 모습이다. 전날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3분의 1 분량을 가계 및 기업 부채 문제, 금융투자상품의 잠재적 리스크 분석에 할애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은은 새로 개발한 가계부채 부실위험지수를 토대로 미국 금리인상 시 가구유형별 스트레스테스트(경제상황 변동에 따른 부실위험 측정) 결과를 보고서에 공개했는데, 이는 금융당국에 가계부채의 미시적 대응 방향을 구체적으로 조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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