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장을 지낸 백운찬(기호 4번ㆍ당선자)과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조용근(기호 2번) 후보의 사실상 맞대결로 큰 관심을 끌었던 세무사회 회장 선거. 연봉 3억원, 2년 임기와 연임이 가능한 국내 최고 대우의 이익단체장을 뽑는 이 선거는 안타깝게도 후보간 비방전과 이에 따른 후보자격 박탈 논란 끝에 이전투구의 드라마로 대중의 기억에 남겨지게 됐습니다. 30일 개표 결과 백운찬 후보가 유효 득표율 55%로 가볍게 조 후보를 따돌리고 신임 세무사회 회장에 선출되었지만 선거 기간 동안 드러난 세무사들의 분파 갈등, 각종 부정선거 논란은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신임 회장이 1만700여 명의 세무사 집단을 이끌어가는 데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될 전망입니다.
사실 이익단체의 선거를 통해 집단 갈등이 두드러지고 외부로부터 지탄을 받는 일은 수시로 벌어집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라면 선거 기간 불거진 갈등은 빠르게 아물 수 있기 때문에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투표가 마무리 된 26일 이후 개표가 끝난 30일까지 5일 여 동안 지켜봤던 세무사회 선거 시스템은 부실과 허점투성이였습니다. 백 신임 회장이 이후 조직을 추스르기엔 손봐야 할 ‘구멍’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났기에 걱정이 앞선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선거를 주관한 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유력 후보 중 한 명의 자격을 박탈하는데 있어 우왕좌왕했습니다. 허용되지 않은 방법(보도자료)을 통해 백 후보의 고문료 수령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조 후보의 ‘후보자격 박탈’을 통보했지만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후보의 이의신청 기간에 대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복수의 세무사들에 따르면 조 후보의 후보자격이 박탈됐다는 문자 메시지는 지난 26일 밤 늦은 시간에 보내졌습니다. 후보자의 이의 신청기한을 이틀로 한정한다는 세무사회 규칙을 적용하면 조 후보는 주말 안에 소명 준비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개표를 하루 앞둔 29일, 선관위 측은 “개표 당일인 30일 오전까지 이의 신청을 받고 최종적으로 후보 박탈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후보자격 박탈 결정을 미룬 셈입니다. 조 후보는 이에 대해 “선관위가 후보자격 박탈 논란이 일자 한 발 물러선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주먹구구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조 후보의 자격 박탈이 기정사실화 된 보도가 나온 29일에도 “상황을 더 파악해봐야 합니다. 아직 (후보박탈은) 미정입니다”와 같은 애매한 답변만 이어갔습니다. 양측 후보자의 눈치를 보느라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대목입니다.
허술한 시스템의 문제는 개표당일인 30일 오전에도 드러났습니다. 이날 선관위는 “선거관리위원들의 회의를 통해 조 후보의 자격박탈이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지만 정작 조 후보가 서울중앙지법에 낸 ‘후보자격 박탈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이미 29일 늦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모든 개표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관위는 ‘후보의 자격은 박탈하지만, 개표와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는 어정쩡한 줄타기를 했던 것입니다. 자칫 백 후보가 아니라 조 후보가 개표결과 최다 득표자로 드러났다면, 세무사회는 후보자격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최다 득표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뻔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조 후보는 개표 수 시간 전에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선거가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세무사들 주변은 “백 신임 회장의 고문료 수령에 대한 해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임 회장이 노골적으로 회원들에게 백 후보를 찍으라고 했다”, “허위 사실을 외부로 알린 조 후보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것 아니냐” 등 상호간의 비방으로 시끄럽습니다.
전 국민 앞에서 선거를 치르면서 상대 후보 흠집잡기에 온 힘을 쓰는 세무사들을 과연 ‘납세자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으로 여겨줄 사람이 있을까요. 유력 후보들 틈에서 우왕좌왕하는 선거 시스템은 과연 신뢰를 줄 수 있을까요. ‘난장판’ 세무사회 선거를 지켜본 뒷맛이 씁쓸합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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