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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하랴 복지부에 보고하랴… 방역 '허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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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하랴 복지부에 보고하랴… 방역 '허둥'

입력
2015.06.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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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타워 없어 시간 낭비 일쑤

정부-지자체들 제 목소리만 키워

환자 이송 수단 놓고도 티격태격

대규모 확산 뒤에야 "적극 협조"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첫 진원지인 경기 평택성모병원 직원들이 30일 재개원 준비를 하고 있다. 성모병원은 6일 재개원한다. 평택=뉴시스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첫 진원지인 경기 평택성모병원 직원들이 30일 재개원 준비를 하고 있다. 성모병원은 6일 재개원한다. 평택=뉴시스

지난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부터는 제가 서울시 방역대책본부장을 맡겠다”고 밝혔다. 중앙정부와 별개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방역 대책을 벌이겠다는 선언이었다. 정부의 무능함에 불안했던 국민들은 박 시장의 선언에 지지를 보냈고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잇따라 독자적인 대응에 나섰다. 방역의 컨트롤타워인 중앙정부와 방역현장의 실행기관인 지자체들은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를 비난하기에만 바빴다. 메르스 사태 18일째인 지난 7일에야 정부와 지자체는 메르스 확산 방지와 국민불안 해소를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손을 모았다. 이미 메르스는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중앙정부-지자체 계속된 엇박자

강원도에서는 지난 10일 정부가 음압병상을 갖추고 있지 않은 강원대병원을 메르스 치료거점병원으로 지정하면서 의료공백사태가 빚어졌다. 강원도가 정부의 추천 요청에 따라 5개 지방의료원을 거점병원 후보로 추천했는데, 보건복지부가 기본적인 장비보유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가장 상급 종합병원인 강원대병원을 지정해 벌어진 일이다. 부랴부랴 강원대병원은 지난 14일 이동식 음압병상 4개를 급히 준비했다. 그 사이 춘천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환자는 메르스 치료거점 병원을 코 앞에 두고 춘천에서 두 시간여 거리인 강릉의료원에 입원해야 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유기적인 협조는커녕 기본적인 소통마저 원활치 못해 생긴 일이다.

지역에선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메르스 대응의 보조자나 도우미 역할로 한정해 문제를 키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질병관리 컨트롤타워의 일원화도 중요하지만 시급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사전에 조치를 취하고 나중에 보고할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국민안전처 등 보고할 데가 나뉘어져 지역 공무원들이 보고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간 소통 부재도 노출됐다. 서울 금천구는 지난 9일 오후 긴급브리핑을 열고 서울시가 밝히지 않은 93번 확진환자의 지하철 이동경로 등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보다 앞서 동작구는 지난 8일 오후 1차 양성 반응을 보인 의심환자까지 보도자료를 배포해 발표했다. 혼란이 가중되자 서울시는 “확진환자는 시에서 발표하는 거로 하자”고 선을 그었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양천구가 관내에서 추가 발생한 확진환자를 단독으로 발표했다.

전남 보성에선 정부의 접촉자 명단 통보가 늦어진데다 전남도와 보성군간의 엇박자로 수백명의 접촉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기도 했다. 보성에 거주하는 이모(64)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확진환자와 접촉한 이후 11일이 지나서야 정부로부터 접촉자로 통보 받아 격리조치됐다. 그 동안 이씨가 접촉한 이들은 750여명이 넘었다. 더구나 이씨의 밀접접촉자들에게 전남도는 격리조치를 주문했지만 보성군은 하루 2차례 발열 등 건강상태만 체크하는 능동감시체계만 적용했다. 보성군이 질병관리본부에 직접 문의한 뒤 전남도와 상의도 없이 결정한 것이다.

메르스 격리대상자의 이송을 놓고도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간 불협화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7일 경북 울릉군은 자가격리 대상자인 A(55)씨를 여객선을 통해 거주지인 대전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선장이 승선을 거부했다. 울릉군은 경북도 소방헬기로 이송하는 방법을 강구했지만 이번에는 경북도로부터 거절당했다. 결국 울릉군은 군 소속 어업지도선인 ‘독도평화호’에 A씨를 태워 보냈다. 울릉군은 헬기로 1시간이면 갈 거리를 행정선에 태우고 가느라 왕복 8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비상시 일사분란한 행정체계 갖춰야

전문가들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중앙정부-지자체 간 공조 체제의 수준은 극히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국립보건원(NIH)을 통해 에볼라,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을 포함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CDC 내 ‘긴급재난관리센터’(EOC)가 지휘를 맡고, NIH는 감염병에 대한 학술적 연구로 이를 지원한다. CDC는 센터장의 일사불란한 통제 아래 비상사태 시 미 전역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EOC는 24시간 공중보건 위기를 보고하고 위급 시 지방정부에 이를 알린다. 유럽연합 질병관리본부(ECDC)도 EOC를 중심으로 각국 중앙ㆍ지방정부, 타 기관과의 상호작용을 위한 규칙을 마련해놓고 평상시 훈련을 수행하고 있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질병관리 선진국들은 전염병이 발생하면 중앙정부가 CDC 등을 통해 지자체를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30일 “메르스 사태를 통해 공공보건 의료체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며 도내 4개 지방의료원을 감염병 관리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 지사는 “최고의 백신은 의료전달체계를 잘 만드는 것”이라며 “4개 지방의료원에 감염 또는 호흡기 내과를 개설하고, 음압격리병동 설치와 감염병 전담요원 배치ㆍ운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지난 10일 메르스대응 지자체장 간담회에서 “국립의료원이 서울 한 곳에만 있어 지역별 보건의료에 불균형이 초래되고 의료재난 시 체계적인 대응이 어렵다”며 “지방의료원을 국립의료원 수준의 지역거점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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