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와 샤넬과 루이 비통과 디오르에서 공짜인 것은? 바로 전시회다.
어마어마한 가격에 콧대까지 높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지난해 후반부터 잇따라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평소의 뻣뻣한 태도를 떠올리면 VIP 고객만 대상으로 하거나 유료 전시라고 생각할 법하건만 모두 무료다. 상품을 예술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이 전시들이 무료인 것은, 주최측의 설명에 따르면 브랜드의 철학과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함이지만, 삐딱한 사람들에게는 상품에 대한 욕망을 한껏 불어넣는 데까지만 공짜로 허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프랑스 오트 쿠튀르 브랜드 크리스찬 디오르가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국내 첫 전시회를 열고 있다. 앞서 5월에는 루이 비통이 광화문D타워에서 수석 디자이너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2015 춘하컬렉션을 준비하며 받은 영감을 주제로 ‘루이 비통 시리즈 2’ 전시를 열었고, 4월에는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들고 나온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된 흰색 펀칭백의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전시가 청담동 10 꼬르소 꼬모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지난해 여름에는 샤넬이 가브리엘 샤넬의 일생을 회고하는 ‘장소의 정신’전을 열었으며, 브랜드 이름을 딴 미술상을 운영하는 에르메스는 상시적으로 플래그십 스토어 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에르메스미술상의 경우 상금 2,000만원이 타조가죽 버킨백(3,000만~4,000만원선) 하나 값보다 적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좋은 작가들을 격려, 양성하는 국내 주요 미술상으로 자리잡았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미술과 맺는 밀접한 관계는 새로울 것도 없지만, 20일 개막해 8월 25일까지 열리는 디오르 전시는 양자간의 각별한 애착관계를 보여준다. 갤러리 오너로 활동하며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달리 등과 깊은 교분을 맺어온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친구 따라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 자꾸 드레스의 형상으로 나타나면서 1947년 첫 컬렉션을 발표, 40대의 나이에 의상 디자이너가 됐다. 마구(에르메스)나 모자(샤넬)에서부터 시작해 오트 쿠튀르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라 오트 쿠튀르에서 시작해 오트 쿠튀르로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 디오르의 자부심.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47년, 디오르가 잔뜩 졸라맨 가는 허리로 표현한 여성성의 복원은 ‘뉴 룩’으로 불리며 세계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어린 시절 건축가를 지망했던 디오르는 “드레스란 여성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한 운명으로 지어진 단기 건축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11개의 주제로 꾸며진 광대한 전시공간은 향수, 액세서리, 사진, 기록물 등이 대거 선보이지만, 디오르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건축적 드레스들이다. 올 칸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샬리즈 시어런의 노란 롱 드레스와 2013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입고 넘어졌던 드레스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다이애나 왕세자비, 내털리 포트만, 리애나 등이 입었던 드레스들이 시대별로 전시 중이다. 서도호 이불 김혜련 김동유 박기원 박선기 등 프랑스 본사가 직접 선정한 한국의 미술작가들과의 협업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번 디오르 전시는 청담동 명품거리에 들어선 디오르의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 축하를 겸하는 것으로, 앞서 열렸던 다른 하이 패션 전시회에 비해 규모가 크고 꾸밈새가 알차다. 2013년 중국 상하이, 2014년 일본 도쿄에 이어 세 번째 열리지만, 도쿄 전시에 비해 규모는 4배 크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의 아시아 시장 전략을 엿보게 하는 순서와 규모다. 전시회를 여는 브랜드들이 모두 프랑스 브랜드인 것은 내년이 한ㆍ불 수교 130주년인 영향도 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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