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한달 맞은 용산 화상경마장
“2번 마에 걸었으면 배당률이 53배인데 돈이나 더 찾아 와야겠어.”
토요일이었던 27일 오후 1시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 14층은 TV를 통해 중계된 과천경마장의 4번째 경주가 끝이 나자 한숨과 욕설로 가득 찼다. 배팅에 실패해 얼굴색이 붉어진 50대 여성은 “다음 판에 몇 번 경주마에 배팅하느냐”며 연방 어디론가 전화를 해댔다. 그는 “오늘은 60만원밖에 안 가져왔는데 조금 더 써야겠다”며 돈을 찾으러 사라졌다.
옆에 있던 등산복 차림의 50대 남성은 경주가 끝나자 손에 들고 있던 마권(경마에서 우승마를 예상하고 사는 표)을 갈기갈기 찢었다. 앞에 놓인 종이컵 안에는 앞선 경기의 배팅 결과를 알려주듯 형체를 알 수 없는 마권이 가득했다. 그는 “XX 도대체 오늘 잃은 돈이 얼마야”라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더니 흡연실로 향했다. 이내 자리로 돌아온 남성은 안내책을 펼쳐 놓고 잔여 경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손엔 다음 경기에 걸 10만원짜리 마권이 들려 있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용산 화상경마장이 31일 개장 한 달을 맞는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에도 마사회는 ‘건전한 레저문화 시설’을 표방하며 개장을 강행했다. 마사회 측의 호언장담은 적중했을까.
이날 화상경마장은 오전 9시부터 입장객들로 붐볐다. 입장 정원(574명)의 절반에 못 미치는 인원이 들어 찼지만, 개장 당시 이용객이 50여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찾는 발길은 확실히 늘고 있었다. 게임 방식은 단순했다. 1층 로비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뒤 정해진 좌석에 앉아 서울 부산 제주에서 벌어지는 실제 경기를 TV 생중계로 보며 단승, 연승(1~3등 말 적중), 복승(1,2등 말을 순서에 상관없이 적중), 쌍승(1,2등 말을 순서대로 적중) 등 6가지 방식으로 돈을 건다.
마사회 측은 게임당 최대 10만원의 배팅 한도가 정해져 있어 사행성이 크지 않다고 자신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기자는 과천경마장 제4경주(1,000m)에 단승식 배팅을 했다. 1등 말이 가려진 1분 만에 배팅액 1만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50분 뒤 2만원 배팅을 한 제5경주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배팅을 한 한모(53)씨는 “우승 예상마가 번번이 2등으로 밀려나면 곧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계속 돈을 걸게 된다”며 “경마가 있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돈을 걸다 보면 수백만원을 잃는 사람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14번의 경마가 진행되는 탓에 실제로 판돈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날 과천경마장에서 벌여진 제5경주의 경우 6가지 배팅 방식 중 단승식 배팅 금액만 27억원이 넘었다.
화상경마장을 찾은 이용객들은 배팅 특성상 중독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모(44)씨는 “수중의 돈이 아니라 마권을 놓고 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보니 카지노에서 코인을 쓸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모(54)씨도 “돈을 잃은 감각이 무뎌지기 쉬워 개장과 동시에 한꺼번에 수십만원씩 구매권을 사놓고 마권과 바꾸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2012년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사행 산업 이용 실태 조사’에서도 화상경마장의 도박중독 유병률(중독자 비율)은 72.9%로 실제 경마장(39.4%)의 두 배에 가까웠다.
같은 시각 건물 입구에서는 화상경마장 입주를 반대해 온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의 농성이 이어졌다. 이들은 화상경마장 개장 이후 매일 집회를 열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고가의 입장료 정책을 통해 품격 있는 고객들만 유치하겠다던 마사회가 약속과 달리 2,000원짜리 저가 입장권을 몰래 팔며 도박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글ㆍ사진=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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