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시트 현실화 땐 큰 타격" 분석도
29일 국내외 금융시장은 주말새 파국 쪽으로 급선회한 그리스 채무협상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한국 등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고 외환시장은 유로화 약세(화폐가치 하락)와 달러화ㆍ엔화 등 안전자산 강세가 교차하며 출렁였다. 각국은 그리스 위기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수준을 넘어 그렉시트(유로존 탈퇴)라는 대형 악재로 치달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그리스 디폴트가 현실화해도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상황별 비상계획을 마련하고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그리스 사태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외국인 자금의 유출(1,102억원 순매도)로 전거래일보다 29.77포인트(1.42%) 내린 2,060.49로 마감했다. 코스닥 역시 17.46포인트(2.33%) 급락한 733.04로 거래를 마쳤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그리스 디폴트 우려에 미국 금리인상 조기화 가능성, 기업 2분기 실적 불안감이 맞물렸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 역시 전거래일 대비 3% 안팎의 급락세를 보였다. 반면 원ㆍ달러 환율은 8.4원 오른 1,125.3원으로 마감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 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이 달러 강세를 부추겼다.
그리스가 30일 만기가 돌아오는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15억유로를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도 이날 개최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고조되면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단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 금융시장도 이 경우 유럽계 자금 이탈 등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리스 디폴트가 현실화하더라도 실물경기 전반으로 위기가 심화할 가능성은 적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고, 주요국들이 2011년 남유럽 경제위기 이후 대(對)그리스 채권액을 대폭 줄여온 점도 낙관론의 근거다.
정부 역시 그리스와의 교역ㆍ금융 규모를 들어 사태의 여파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2014년 말 기준)은 수출 0.2%, 대외채권액 0.8%에 불과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그리스와의 교역규모는 올 들어 더욱 감소,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73.1%, 수입은 41.1% 각각 줄었다.
문제는 그리스 채무협상이 교착된 채 다음달 10일 이후 줄줄이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마저 상환되지 못할 경우다. 특히 20일 만기를 맞는 35억유로 규모의 유럽중앙은행(ECB) 채무는 그리스 위기가 디폴트에서 그렉시트로 격화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CB가 그리스 은행권의 유일한 돈줄인 긴급유동성지원을 중단하고, 그리스가 새로운 화폐 발행으로 대응할 경우 그렉시트는 현실화하게 된다. 그렉시트가 유럽 경제의 미약한 회복세를 꺾고 영국, 포르투갈, 터키 등의 유로존 추가 탈퇴를 부추길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그렉시트로 유로존 경제가 불안정해지면 대유럽 수출 감소, 유럽계 자금 이탈 등의 형태로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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