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키운 건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치료 받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오히려 병을 얻어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이 속출했다. 의료계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에 대해 평소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병원 평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눈 가리고 아웅’식이 아닌 제대로 된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병원 평가는 2011년 시행된 ‘의료기관 인증제’에 따라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업무를 위탁 받아 실시하고 있다. 인증 받은 의료기관은 다른 병원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고, 공공 보건의료사업에 참여할 때 가점이 부여된다.
평가인증원은 의료기관이 평가를 신청하면 4~6명의 조사팀을 구성해 3~4일 동안 현장 평가를 실시한다. 조사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평가인증원은 인증심의위를 열어 인증 여부와 등급 등을 결정한다.
그런데 병원 평가를 경험한 많은 의료인들은 “방식이 허술하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평가 직전 몇 번 연습하거나 미리 준비하면 얼마든지 ‘무사통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증 받은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 A씨는 “감염관리가 가장 까다로운 곳으로 꼽히는 중환자실이나 투석실 기기는 수시로 오염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자체 검사 결과가 담긴 서류를 보여주면 넘어간다”고 말했다.
또다른 의료인 B씨는 “보통 평가자가 특정 의료인을 지정해 평가하겠다고 한 뒤 진료를 하도록 한다”며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진료를 하게 되면 당연히 쉽게 통과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900곳이 넘는 전국 병ㆍ의원이 인증 받았지만 신뢰도는 떨어진다.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은 2011년 가장 먼저 인증 받았고, 지난해엔 감염관리 항목에서 최우수 점수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외국기관의 평가는 다르다.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의 평가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정말 끔찍하다”고 회자된다. JCI 평가를 받은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평가자들이 병원 서류와 실제 기기의 일련번호를 일일이 대조하고, 불시에 무작위로 의료인들의 감염관리 습관을 검사한다”며 “평소 손 씻기 등이 몸에 배 있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JCI가 ‘정답’은 아니다. JCI는 환자가 입던 옷이나 사용한 시술도구 등이 드나드는 통로와 소독된 물품이 오가는 통로는 나뉘어 있어야 하고, 중환자와 보호자 역시 같은 출입구로 다녀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하지만, 국내 병원의 현실상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때문에 국내 현실을 감안한 평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훈 고려대안암병원장은 “폐기물과 청결물 통로 분리는 출입 시간을 달리 해 같은 통로를 쓰더라도 마주치지 않는 식으로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며 “보건의료 정책이 다인실 확충 등 복지 위주 관점에서 벗어나 고난도 질병으로부터 환자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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