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악기은행, 명품 악기 10여점 중
유독 2, 3점이 좋은 성적 내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 '행운의 바이올린'으로 통해
"고악기는 음색과 캐릭터 분명, 연주자 스타일과 맞아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0)은 지난해 4월 10여년 간 쓰던 국산 악기를 명품 고악기로 바꾼 후 굵직한 국제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고악기를 쓰기 시작한 지 다섯 달만인 작년 9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르더니, 올해 5월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쇼팽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은 스포츠로 치면 올림픽 금메달과 맞먹는 성적이다. 임지영이 바꾼 악기는 주세페 과다니니가 1794년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만든 작품. 지난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악기은행을 통해 3년간 무상 대여했다.
현악기로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려면 좋은 악기가 필수이지만, 유명 악기 중에서도 콩쿠르와 궁합이 맞는 악기가 따로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계자는 25일 “1993년부터 악기은행을 운영하며 명품악기 10여점을 확보해 젊은 연주자들에게 무상 대여해왔지만 그 중 특히 2~3점이 집중적으로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며 “난도 높은 기교와 섬세한 감정 표현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악기가 그렇다”고 말했다.
유독 성적이 좋은 명품 악기는 임씨가 쓰는 크레모나를 비롯해 1763년산 과다니니 파르마,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 정도다. 바이올리니스트 조가현이 파르마를 들고 레오폴트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2006년) 2위, 워싱턴 국제 콩쿠르(2009년) 1위를 차지했고, 클라라 주미강이 투린을 대여해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10년) 1위, 일본 센다이 콩쿠르(2010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크레모나는 연주자들이 국제 콩쿠르에 들고 나갈 때마다 두각을 나타낸 ‘행운의 바이올린’로 통한다. 2004년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이 악기로 칼 닐센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이래 최예은(2006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2위) 신지아(201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위) 등이 줄줄이 상을 받았다.
대여자가 바뀌며 콩쿠르 성패가 엇갈리기도 했다. 2013년부터 3년간 크레모나를 대여하기로 한 김봄소리는 그해 ARD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오른 후 “소리를 바꾸고 싶다”고 재단에 요청해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으로 교체했다. 크레모나는 지난해 오디션을 거쳐 임지영에게 돌아갔고, 임지영은 이 바이올린으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투린을 들고 같은 대회에 참가한 김봄소리는 결선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권혁주 역시 크레모나로 칼 닐센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듬해 바이올린을 투린으로 바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참가, 6위에 그쳤다.
재단 관계자는 “좋은 악기도 연주자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허사다. 고악기는 음색과 캐릭터가 분명해 연주자와 스타일이 맞지 않으면 효과를 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퀸 엘리자베스 우승 후 크레모나보다 더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의 허긴스를 4년간 빌려 쓸 수 있게 된 임지영도 “악기의 유명세보다 연주자와 악기의 궁합이 중요하다. 한동안 두 악기를 번갈아 연주해보고 계속 사용할 악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영은 오는 8월 31일 광화문 금호아트홀 ‘금호악기시리즈’ 연주회에서 크레모나 바이올린으로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22번 A장조 등을 선보인다. 재단은 27세 이하 젊은 연주자 중 오디션을 거쳐 명품 악기를 3년간 무상 대여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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