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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김사랑·주진모의 재발견 '내 사랑 은동아'

입력
2015.06.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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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란 주제 만큼 한국 드라마에서 흔한 게 또 있을까. 너무나 흔해서, 잘 못 쓰면 구태의연한 소재에 불과하지만 잘 쓰면 초대박이 터진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시청률 기록(65.8%)을 갖고 있는 ‘첫사랑(KBS, 1997년)’은 제목부터 대놓고 ‘첫사랑’이다. 2002년 방영됐던 ‘겨울연가(KBS)’는 첫사랑을 지고지순하게 바라보는 욘사마를 탄생시켜 일본 아줌마들까지 사로잡았다.

‘사랑하는 은동아(JTBC)’는 기본 골격만 놓고 보면 ‘겨울연가’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남녀 주인공, 기억상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 아련한 어린 시절 회상 장면 등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의외로 신선하다. 무엇보다도 첫사랑 순애보를 연기하기엔 너무 늙은(?) 남녀 주인공 주진모(41세)와 김사랑(37세)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사랑하는 은동아'. jtbc 방송 캡처.
'사랑하는 은동아'. jtbc 방송 캡처.

김사랑은 희한하게도 미모에 비해 제대로 된 배역을 맡지 못했던 배우였다. 연기력이 부족해서, 라고 하기엔 그 동안 다른 미녀 배우들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좋은 배역을 턱 하니 꿰찬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나마 김사랑이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드라마는 ‘시크릿 가든(SBS, 2011년)’이었고, 거기에서도 김사랑은 백치미녀 캐릭터의 조연이었다. 당시 김사랑의 나이가 이미 33세.

‘사랑하는 은동아’의 제작진이 여주인공으로 김사랑을 결정하기까진, 모르긴 해도 꽤 격렬한 내부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흥행보증수표도 아닌 37세 여배우를 아련하고 순수한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쓰다니. 게다가 그 동안 김사랑의 이미지는 ‘청순’보다 ‘섹시’에 가까웠으니까.

이 드라마의 한 제작진이 쓴 블로그를 보면, 김사랑 캐스팅 뒷얘기가 나온다. 제작진이 원한 여배우의 조건은 이랬다. ▶10살 남자아이의 엄마이면서(나이가 어리면 곤란함) ▶그러나 애엄마 같진 않아야 하고(진짜 애엄마인 배우는 첫사랑 스토리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음) ▶가리지 않고 알바를 하면서 아들과 남편을 부양하는 씩씩한 캔디이면서(김사랑은 사실 그동안 이런 이미지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억척 아줌마의 느낌은 전혀 없는 여배우가 필요했다. 김사랑이 어울릴까 하는 부분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으나 연출자 이태곤 감독이 김사랑과 길게 이야기를 나눠본 후 서정은(은동이) 역할로 김사랑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는 김사랑의 인생작이 됐다는 것.

‘사랑하는 은동아’는 10회까지 방영된 현재 시청률이 1%대 중후반에 불과하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코너에선 9.9점(10점 만점)을 받을 정도로 지지층이 확실하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평가다.

무엇이 시청자들을 끌어당길까. 일단 지독한 첫사랑을 다룬 작품 치고 이례적으로 코믹한 설정과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주진모가 주변 인물들과 투닥거리는 코믹 장면은 주인공을 현실적이고 생생한 인물로 만들어 준다. 이를테면 ‘위대한 개츠비’라던가 ‘겨울연가’의 남주인공처럼 끝 없는 순애보만을 보이는 무겁고 비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거다. 그만큼 남주인공 주진모의 매력이 터진다.

또 하나는 이런 점들을 기반으로 완벽한 판타지를 준다는 점이다. 10대와 20대에 잠깐 마주친 소녀, 긴 머리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눈망울,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도 세련된 영상과 빠른 템포의 연출로. 그리고 그녀는 늘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녀를 만나겠다는 일념만으로 톱스타가 된 남주인공 앞에 기억을 잃은 채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여주인공이 나타난다. 드라마의 줄거리가 사실상의 불륜이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멍하게 빠져드는 느낌이 있다. 여고 시절 순정만화를 보던 때의 느낌이랄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판타지를 시청자 가슴에 콱 박아주는 무게중심을 주진모가 잡아준다. 주진모는 새삼스럽게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생겼고 심지어 연기까지 잘 한다.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는 김사랑이 바로 자신이 찾아 헤매던 첫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 김사랑을 갑자기 끌어안으며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심쿵’이다. 만일 남주인공의 연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면, 극중 지은호는 유부녀를 스토킹하는 싸이코로 보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를 보고 빠져든 ‘남자’들이 엄청 많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여성 시청자들이 김사랑에 몰입하는 것보다도 남성 시청자들이 주진모에 몰입할 때 훨씬 짜릿하다는 얘기다. 돈이며 외모며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게다가 평상시엔 로드매니저한테 구박을 당할 정도로 빈틈이 많은 인간적인 성격에, 한 여자만 사랑하는 순애보까지 갖췄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청순글래머 김사랑. 남자들의 판타지를 제대로 자극하지 않았나.

주진모는 개인적으로 늘 의아한 배우였다. 너무 오랜 기간 과소평가된 것 같아서다. 홍콩배우를 연상케 하는 조각미남에 연기력도 나쁘지 않은데, 연예계에선 왜 장동건-정우성 급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녔다. 그 동안 ‘미녀는 괴로워’나 ‘쌍화점’ 같은 흥행작을 내놓긴 했지만, 주진모는 여주인공과 짝을 이뤄 멜로의 중심 역할을 하는 원톱 남자 배우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은동아’가 대박 흥행작은 아닐지 몰라도, 주진모라는 배우가 충분히 특A급 톱스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주진모에게도 이 드라마는 ‘인생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사랑’은 판타지다. 뭐, 결혼하고 애 낳고 살아보니 실로 그러하다. 하지만 첫사랑을 그린 ‘사랑하는 은동아’의 배우들을 보면서 뭔가 뭉클했다. 현실에서의 주진모와 김사랑이라는 배우들 모습 자체로 또 다른 판타지가 이뤄진 걸 본 것 같아서. 진지하게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언젠가, 누구에게나, 어느 나이에라도 ‘인생작’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사랑하는 은동아'의 포스터.
'사랑하는 은동아'의 포스터.

사랑하는 은동아

JTBC 매주 금토 오후 8시40분

20년간 한 여자만을 사랑한 어느 남자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

★ 시시콜콜 팩트박스

1) 서정은(김사랑)의 남편 역할을 맡은 김태훈은 배우 김태우(‘징비록’ 선조 역할)의 동생이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김태훈 얼굴에서 자꾸 김태우가 보인다.

2) 김태훈이 맡은 극중의 최재훈은 촉망받던 야구선수 출신이었다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인물이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는 ‘봉황기 역대 최고방어율을 기록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봉황기는 한국일보 주최 고교야구대회다. JTBC와 같은 계열사인 중앙일보도 고교야구대회를 주최(대통령배)한다. JTBC 드라마인데 굳이 대통령배로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 좀 신기하다. ㅎㅎ (그리고 설마, 최고방어율이 아니라 최저방어율이겠지)

3) 주진모의 10대 역할을 소화한 배우는 아이돌그룹 ‘GOT7’의 주니어다. 예명이 왜 주니어냐 하면, 소속사의 그분(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과 이름이 같아서란다.

방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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